지난 3월 종영한 TV조선 주말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시즌1’에서 판문호(김응수)는 강아지 ‘동미’를 유치원에 보낸다. 판문호는 강아지에게 첫사랑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주는 등 강아지를 가족보다 더 아끼고, 이 과정에서 아내 소예정(이종남)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어느 날 판문호가 동미를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기로 했다며 자랑하자 아내 소예정은 “정상이 아니야, 요즘 세상”이라며 혀를 끌끌 찬다.

요즘 세상이 정말 정상이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아무튼, 주말’이 지난 3일 직접 강아지 유치원을 찾았다. 서울 성동구의 종합 펫케어 센터 바우라움이 운영하는 ‘멍문 유치원'. 애견 호텔, 동물병원, 유치원이 함께 있는 이 센터는 개 짖는 소리인 ‘멍’과 ‘명문’의 합성어로 유치원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이 유치원의 하루 일과를 재구성했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의 펫케어 센터 '바우라움' 내 강아지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강아지들에게 방석, 지압판 등 다양한 촉감을 경험하게 하는 '환경 풍부화 교육'을 하고 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 통학 버스로 등원하는 강아지들

아침 9시가 되자 본격적인 등원이 시작됐다. 강아지 원생들이 주인의 손에 이끌려 속속 유치원에 도착했다. 바우라움 유치원 정원은 총 75마리. 일주일에 1~2번만 출석하는 강아지도 있어 하루 평균 40~50마리가 유치원을 찾는다. 주 5회 이용 기준 한 달 등록비는 몸무게별로 84만원에서 196만원. 사람 유치원보다 몇 배 비싸지만, 이번 달 마감도 벌써 거의 끝났다고 했다.

어떤 강아지들은 견주 대신 선생님들 품에 안겨 유치원으로 들어왔다. ‘펫셔틀’로 등원한 강아지들이다. 이 유치원은 직접 등·하원이 어려운 견주들을 위해 펫셔틀을 운영한다. 강아지를 집에서 학원까지 데려오는 일종의 통학 버스다. 일반 유치원이 부모에게 출석 여부를 문자로 보내는 것처럼, 이곳 유치원도 펫셔틀로 등원하는 강아지의 ‘인증 샷’을 아침저녁으로 견주에게 보낸다.

몇몇 개들은 등원하자마자 메디컬 센터로 향했다. 건강 체크를 받아야 하는 개들이란다. 장모 치와와 ‘레오’를 돌보던 김소희 수의사는 “설사나 감기 등 자잘한 병을 앓고 있는 개들의 상태를 매일 점검한다”고 했다.

소란스러운 출석이 끝나고 나서 강아지들이 향한 곳은 실내 놀이터. 보더콜리와 골든레트리버, 비숑, 휘튼 테리어 등 몸집과 생김새가 제각각인 개들이 목줄 없이 돌아다니며 서로 코를 비볐다.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반별로 교육하고 틈틈이 ‘개별 식사’

10시가 넘어가면 오전 교육이 시작된다. 오전 교육은 반별로 이뤄진다. 이곳 유치원에는 네 반이 있는데, 각 반 담임 선생님들이 소심한 강아지들과 사교성 좋은 강아지들을 함께 뛰어놀도록 유도한다.

방석과 담요, 지압 패드 등이 곳곳에 깔린 실내 놀이터에서 각 반 선생님들이 강아지를 기구 위에 앉히고 ‘앉아’ ‘엎드려’를 반복했다. 강아지가 새로운 바닥 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환경 풍부화 교육이었다. 변성수 총괄원장은 “강아지가 산책하러 나갔을 때 바닥 촉감에 미리 익숙해지게 돕는 것”이라며 “실내에만 사는 개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했다.

원견(園犬)들은 선생님 말씀을 충실히 따랐다.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고, ‘앉아’라는 말에 냉큼 앉았다. 그런데 교육 중 한 살배기 비숑 도도가 갑자기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강아지 유치원이 사람 유치원과 다른 점은 별도의 점심시간이 없다는 것. 강아지는 견종과 개월 수에 따라 식사 시간과 식사량이 천차만별이다.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개도 있고, 네 끼를 먹는 개도 있다. 견주들이 강아지들에게 도시락을 딸려 보내면, 선생님들이 강아지마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인다.

들어가는 게 있으면 나오는 것도 있는 법. 강아지들은 아침 점심으로 배변 교육을 받는다. 용변을 볼 수 있는 배변판이 마련돼 있지만, 다른 장소에 실례를 하는 강아지도 있다. 이 때문에 유치원 곳곳에는 언제나 휴지와 세정제, 대걸레가 비치돼 있다.

◇1대1 수업 받고, 봄엔 벚꽃놀이

이윽고 오후 교육이 시작됐다. 그룹별로 진행된 오전과 달리, 오후 교육은 1대1 수업으로 진행된다. 정인호 ‘바우 3반’ 담임 선생님이 무게가 20㎏에 달하는 래브라도 두들 ‘보로’를 데리고 복도로 향했다. 보로가 받을 교육은 개가 산책할 때 주인에게만 집중하도록 하는 ‘옆에 따라’ 교육이다. 대형견이 산책 중 다른 개나 사람을 무는 사고를 방지하는 게 훈련의 목표다.

보로 옆에 덩치가 훨씬 작은 닥스훈트 ‘비단이’가 나타났다. 정인호 선생님이 손에 간식을 쥐고 보로의 시선을 자신의 손에 고정했다. 보로는 비단이를 잠깐 쳐다보더니 이내 선생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후 사람, 유모차 등 다양한 장애물을 거치면서도 보로는 선생님 손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정 선생은 “오후 시간에는 ‘이리 와’ ‘앉아’ ‘엎드려’ 같은 기본 교육부터 개를 집에 적응시키는 ‘하우스 교육’, 하이파이브 등 개인기를 차례로 알려준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되면 순차적 하원이 시작된다. 개들이 차례로 선생님 손에 이끌려 통학 버스에 올랐다. 어떤 개들은 집에 가기 싫다는 듯 유치원을 빙빙 돌거나, 친구들의 코를 비비기도 했다. 이곳에는 늦게까지 근무하는 학부모를 위한 ‘방과 후 교육’도 있다. 남은 개들은 음악을 듣거나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견주의 퇴근을 기다린다.

바우라움의 커리큘럼은 총 2년 반. 기본 교육부터 놀이 학습, 사회화 교육, 행동 교정 등을 폭넓게 진행한다. 강아지 유치원이라고 매일 교육만 진행되는 건 아니다. 봄에는 인근 벚꽃길로 소풍을 가기도 하고, 매달 생일 파티도 연다. 사람이 다니는 유치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어떤 견주들이 강아지 유치원을 찾을까. 변성수 총괄원장은 “직장 생활로 자주 집을 비우고 아이를 키우지 않는 1~2인 가구가 가장 많다”면서 “서울뿐만 아니라 남양주, 판교 등에서도 찾아온다”고 했다.

◇해외선 반려견 예절 자격증도 발급

강아지 유치원은 수년 전만 해도 강남 일부 지역에만 존재했다. 그러나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크게 늘면서 최근에는 지방에 개원하는 유치원이 생길 정도다. 5월 기준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강아지 유치원만 300여 곳. 지난달부터 반려견 두 마리를 판교의 한 강아지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는 김민주(22)씨는 “사회성 부족했던 다른 강아지와 어울려 놀면서 사교적으로 변한 것 같아 만족한다”고 했다.

반려견에 대한 시선이 변하면서 강아지뿐만 아니라 견주들을 위한 교육도 함께 진행하는 유치원도 생겨나고 있다. 두 살배기 화이트 테리어 ‘이억이’를 키우고 있는 직장인 강윤정(35)씨는 얼마 전까지 주말마다 강아지 유치원에서 반려견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유치원에서 이억이는 예절 교육과 피트니스 교육을, 강씨는 강아지와 신뢰 쌓는 법을 배웠다. 강씨는 “평생 강아지를 키웠지만 강아지를 유치원에 보낸 것도, 내가 교육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면서 “유치원에 다니면서 개 주인의 사소한 잘못이 강아지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해외에선 이미 강아지 교육과 관련된 문화가 자리 잡았다. 미국애견연맹은 1989년부터 CGC(Canine Good Citizen·반려견 예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시험을 통과한 개들에게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개가 군중 속을 얌전히 이동하는지, 다른 개를 만났을 때 공격하지 않는지 등을 시험하는 CGC 자격에 매년 10만 마리 이상이 응시한다. 한국에서도 일부 유치원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서울 강남구 강아지 유치원 ‘해피퍼피’의 홍진오 케어팀장은 “5년 전 처음 유치원을 열었을 때만 해도 ‘개 유치원'이란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개 주인들이 적극적으로 강아지 유치원을 찾을 정도로 애견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