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로고가 언제부턴가 놀랍도록 비슷해졌다. 과장을 조금 보태 서로 구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버버리(Burberry), 생 로랑(Saint Laurent·이브 생 로랑), 발맹(Balmain), 발렌시아가(Balenciaga), 베를루티(Berluti), 리모와(Rimowa) 등 많은 명품 브랜드가 로고 서체를 산세리프(sans serif)로 바꿨고, 그것도 대문자로만 조합했다.<사진> 샤넬(Chanel), 펜디(Fendi) 등 브랜드의 시작부터 그랬던 곳까지 합치면 명품 브랜드 로고의 대세는 산세리프 대문자 서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산세리프란 ‘장식이 없는 글꼴’을 뜻한다. 삐침이나 획의 굵기 변화 등 글씨를 장식하는 요소를 세리프(serif)라고 하고, 여기에 ‘없음’을 뜻하는 프랑스어 ‘sans’을 붙여 장식이 없고 직선적인 글씨를 산세리프라 부른다. 한글 글씨체 중에서는 바탕체·명조체·궁서체 등이 세리프로, 고딕체는 산세리프로 분류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명품 브랜드들은 명조체 로고를 버리고 고딕체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글꼴 개발 업체 윤디자인 편석훈 대표는 “요즘 기업들이 로고로 고딕체를 선호하는 건 시대가 바뀌고 미디어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딕체(산세리프)가 더 잘 보입니다. 더 모던하고 미래 지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지면 인쇄에 최적화된 세리프 글꼴은 컴퓨터 모니터나 휴대전화 화면 등 디지털·모바일 환경에서는 덜 또렷해 보인다. 해상도가 낮을 경우 심지어 글씨가 깨지는 경우도 더 많다. 그렇다 보니 글꼴을 단순화하는 게 기업 로고 트렌드가 됐다. 최근 산세리프로 글꼴을 다듬은 구글이 대표적이다. 광고·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디메이저 박건호 총괄크리에이티브디렉터·이사는 “글꼴 외에도 심벌을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단순화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등 단순화가 대세”라고 했다.

명품 브랜드 로고는 세리프가 많았다. 전통과 역사를 강조하기에 알맞은 글꼴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명품 브랜드가 급격하게 산세리프로 돌아선 건 시대와 함께 판매 채널과 소비층도 변했기 때문이다. 명품 거래 플랫폼 머스트잇에서 2020년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명품 브랜드 상품의 합산 판매량이 2019년 대비 75% 증가했다.

명품 온라인 판매 급증은 MZ세대라 불리는 젊은층이 주도하고 있다. 과거 명품 소비가 오프라인·중장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요즘은 온라인·2030이 주도한다. 편석훈 대표는 “MZ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선호도 조사 결과 바탕·명조체보다 고딕체가 좋다는 응답이 75%였다”고 했다.

명품 브랜드 로고가 산세리프 대문자 일색이 된 건 시장과 시대에 적응하는 당연한 진화로 보이지만, 회의적 시각도 있다. 한 패션 마케팅 전문가는 “명품은 타 브랜드와의 차별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며 비싼 가격에 물건을 팔아왔는데, 이 두 요소를 부정하는 산세리프가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