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가 보이는가. 왼쪽부터 오세훈 당선인 측이 오 당선인이 신었다고 반박한 국산 브랜드 '탠디' 로퍼와 박영선 후보 측이 제시한 사진, 이탈리아 '살바토레 페라가모' 로퍼./탠디·중구자치신문·살바토레 페라가모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명품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이하 페라가모)’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코로나로 정장을 입지 않고 구두를 신지 않는 추세가 강해지면서 남성복 업계가 무거운 한숨을 쉬는 요즘, 남성 구두 브랜드에 관심이 쏠렸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왕년의 명품’으로 인식되는 페라가모라니 더욱 그랬다.

새로운 바람이라도 부나 싶어 오랜만에 정치 뉴스를 검색했다. 하지만 왠걸, 박영선 후보 측에서 오세훈 후보(이제 당선인라고 해야겠다)의 서울 내곡동 처가 땅의 ‘셀프 보상’ 의혹을 제기하면서 ‘페라가모 구두’를 신었다는 목격담의 진위가 쟁점이 되면서 화제가 된 것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남성 정장 구두가 세간의 시선을 받았으니, 반가운 소식이다.

페라가모는 수제 구두로 시작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다. 나폴리에서 태어난 창업자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91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심장을 녹아 내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구두를 만들며 큰 성공을 거둔다. 1927년 이탈리아로 금의환향한 페라가모는 피렌체에 본인 이름을 내건 구두 브랜드를 설립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두뿐 아니라 여성용 가방과 남녀를 위한 제품을 두루 생산하는 이탈리아 대표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다.

문제의 페라가모 구두는 로퍼(loafer) 혹은 모카신(moccasin)이라 부르는, 끈을 매지 않는 구두다. 신고 벗기 편해서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하는 국내에서 특히 잘 팔리는 구두 스타일이다. 형태가 단순해서 장식이 유난히 도드라지는 편이다.

내곡동 생태탕집 주인이 페라가모 구두라 확신할 만큼 오랫동안 인기를 끌어온 제품이다. 특히 2000년대엔 돈 좀 있는 이들은 누구나 유사한 페라가모 구두를 한두 켤레쯤 가지고 있었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브랜드에서 비슷한 형태와 장식의 제품을 너무나 많이 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가 가까이서 직접 확인하지 않는다면 혼동할 여지는 충분하다.

구두 발등에 있는 페라가모 특유의 장식은 ‘말발굽’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명칭은 ‘간치니(gancini)’다. 고리·갈고리·낚싯바늘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이탈리아 저택에 가보면 과거 말 고삐를 묶어두기 위한 고리가 외벽에 박혀 있는데, 이것도 간치니라 부른다. 페라가모는 이를 단순화해 제품 장식으로 사용했다. 간치니는 너무나 유명해지면서 페라가모의 상징이자 대명사가 됐다.

간치니 덕분에 페라가모는 누가 봐도 한눈에 비싼 신발임을 알 수 있었다. 2000년대 페라가모가 국내에서 잘 팔리는 데 도움 되기도 했지만, 국내에서도 로고가 크게 박힌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페라가모가 한물간 브랜드로 여겨지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오세훈 측은 “박영선 후보 측이 제시한 사진 속 구두는 페라가모가 아닌 국산 브랜드 제품”이라고 반박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흐릿한 사진 속 구두는 페라가모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잘 만든 고급 구두는 형태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날렵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사진 속 구두는 전형적인 중저가 국산 구두의 투박한 형태를 하고 있다. 페라가모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사진 속 오세훈 당선인이 신은 구두와 비슷한 제품이 80만~12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오 시장 측이 주장한 국내 브랜드 제품은 공식 인터넷 쇼핑몰에서 20만~30만원대로 검색된다.

이번 선거를 ‘페라가모와 생태탕’으로 기억할 시민은 필자뿐만은 아닐 듯하다. 구두와 정장을 차려 입는 격조 있는 옷차림을 추억하는 계기라도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