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박혜정(25)씨는 얼마 전 낡은 옷을 의류 수거함 대신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박씨는 “원래는 의류 수거함에 버리려고 했는데, 동네를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면서 “수년 전까지는 원룸촌 주변에 의류 수거함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다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서 헌 옷 배출을 담당하던 의류 수거함이 사라지고 있다. 불법 수거함이 속속 철거되고 있는 데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매출이 떨어진 사업자들도 수거함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주택가에 설치된 의류 수거함. 최근 4년 동안 서울에서만 5000여개의 의류 수거함이 사라졌다. /유종헌 기자

◇서울 수거함 4년 새 5000개 줄어

의류 수거함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취지에서 처음 생겨났다. 그러나 국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헌 옷이 국내에서 재활용되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 지금은 비교적 상태가 좋은 일부 옷만 노인 복지관, 장애인 시설 등에 전달되고 80% 이상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극빈국에 수출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의류 수거함 개수는 총 1만4827개. 2016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1만9920개)와 비교하면 4년 만에 5000개 넘게 줄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류 수거함은 지자체 관리 권한 밖에 있었다. 사업자들이 도로에 무단으로 의류 수거함을 설치한 다음, 여기 모인 의류를 해외 등에 수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민권익위의 2016년 조사 당시에는 전국 226개 지자체 중 11곳만 도로 점용 허가 후 의류 수거함을 설치한 것으로 나왔다. 이 조사 직후 환경부가 각 지자체에 불법 의류 수거함을 정비하도록 하는 조치 마련을 권고하면서, 불법 의류 수거함이 크게 줄었다. 지금은 장애인 단체, 보훈 단체 등이 각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의류 수거함을 운영하고 있다.

◇ 헌 옷 가격 kg당 800원→200원

최근에는 시의 허가를 받고 의류 수거함을 운영하는 사업자들 역시 수거함을 줄이는 추세다. 의류 수출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진 까닭이다. 수년 전부터 중국이 헌 옷 수출 사업에 뛰어들면서 의류 단가가 낮아진 데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수출 선적 가격이 크게 뛰는 등 사업성이 악화됐다.

대구에서 헌 옷 수거 및 수출 업체 제이엠트레이딩을 운영하는 김재원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선박 수출이 막히면서 아프리카로 나가지 못한 물량이 아직 쌓여있다”면서 “kg당 700~800원 하던 헌 옷 단가가 200원 밑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서울 한 구청 관계자는 “수거 업체 대표들이 매출 감소로 직원을 해고하고 직접 의류 수거함을 치우고 있다”면서 “아예 사업을 접은 업자도 많다”고 했다.

2020년 기준 서울에서 의류 수거함이 가장 적은 자치구는 종로구(175개)다. 종로구는 300개 넘던 의류 수거함을 2019년부터 순차적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의류 수거함이 도시 미관을 저해한다는 의견이 많고,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등 관리가 어려워 수거 업체에 수거함을 빼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업체들도 수거함 숫자가 줄어들어야 수거 주기가 짧아지고 관리가 쉽다면서 요청을 대부분 수용한다”고 했다.

줄어드는 의류 수거함과 달리, 버려지는 의류는 늘어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하루에 버려지는 의류 폐기물은 2010년 175.5t에서 2018년 181.7t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그렇다면 의류 수거함을 찾지 못한 헌 옷들은 어떻게 될까.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는 일반 쓰레기로 배출돼 소각되고, 일부는 가정 방문 수거 업체를 통해 국내 구제 시장 등에 유통된다. 헌 옷 방문 수거 업체를 운영하는 강성수(47) 대표는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은 관리비가 적게 들고, 옷 오염도 적어 훨씬 비싼 값에 팔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