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 앞에서 ‘북다마스’를 연 김예진 대표.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차에서 책 판다!”고 놀라며 지나갔다. 그는 “책은 안 사도 북다마스 사진을 찍고 가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8일 정오, 서울 용산구의 한 골목길에 있는 카페 앞에 흰색 다마스 한 대가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김예진(28)씨가 차 뒤편으로 가서 문을 열자 식자재 대신 책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차 안에서 책장과 책상을 꺼내 조립한 뒤 다마스 뒤편에 놨고, 여기에 책을 한 권 한 권 늘어놨다. 낚시터에서 쓰는 간이 의자를 펼치고 무릎 높이 자그마한 입간판까지 세워놓자 ‘좌판’이 펼쳐졌다. 서점 ‘북다마스’의 영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서점을 혼자 운영하는 김 대표는 낚시 의자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쳐 들며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북다마스는 다마스에 책을 싣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이동식 서점이다. 여기에 실린 책은 모두 독립 출판물. 올 3월부터 서울과 수도권을 돌아다닌 북다마스는 지난 8월 31일 ‘전국 출점(出店)’을 시작해 35일간 경기⋅충청⋅전라⋅제주⋅부산 지역을 돌고 왔다. 모든 곳은 김 대표가 다마스를 직접 몰고 갔으며 제주도를 오갈 때만 다마스를 배에 실어서 갔다. 그는 검게 탄 손을 내보이며 “이동 시간 때문에 35일 중 21일만 영업을 했다. 그 기간에 340권을 팔았으니 연료비와 모텔비 정도는 건진 셈”이라며 웃었다.

대학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김 대표는 IT 회사에서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작업을 하던 직장인이었다. 애초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들어간 직장이었다. 2년 반 다닌 뒤 그만뒀다. 그의 변은 이러했다. “대학 때 후배를 통해 처음 독립 출판물을 접했을 때 ‘이게 책인가’ 싶었다. 그 뒤로 독립 출판물을 만드는 워크숍에 갔다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데 놀랐다. 아무리 평범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소통하는 게 재미있고, 내 성격에도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립 출판물을 다루는 서점을 열려고 했더니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장소를 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라인 서점을 만들어도 됐지만, 김 대표에겐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이동 책방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큰 버스에 책을 싣고 다니는 도서관은 있었지만, 이동 서점을 본 적은 없다. 찾아보니 일본에 작은 트럭에 책을 싣고 다니는 북트럭이 있더라. 대부분의 독립 책방은 골목에 있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알고, 가는 사람만 간다. 내가 직접 서점을 몰고 다니면서 독립 책방이 없는 데서 서점을 차리면 독립 출판물을 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동 책방을 계획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차는 ‘다마스’였다. 더 큰 차도 알아봤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웠고, 책까지 싣고 다니면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담았다’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는 차 이름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북다마스라는 말을 만든 순간 ‘책을 담은 차’라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거든요.”

‘이동 서점’이라고 하면 다들 ‘캠핑카’와 같은 낭만을 기대한다. 김 대표는 “다마스는 에어백이나 다른 안전장치가 없고, 수동 운전을 해야 한다. 2종 운전면허를 갖고 있었는데, 이걸 몰려고 시험을 네 번씩 떨어져가며 1종 운전면허를 땄다”고 했다. 딸의 퇴직과 창업 소식을 들은 부모의 반응도 걱정이 앞섰다. 운전을 거의 안 해본 김 대표가 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데다가 길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장마 때 비가 많이 온 날, 그리고 연료가 다 떨어졌는데 주변에 LPG 충전소가 없어서 아찔했던 적 말고 아직 큰 위험을 겪은 적은 없다”고 했다.

이 사업을 계획했을 때 문화 축제나 대학을 돌아다니려고 했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는 최근 주로 카페 마당이나 카페 앞 주차 공간에서 영업을 한다. 인터뷰를 한 날 그는 카페 앞에서 영업을 시작한 지 15분 만에 카페를 찾은 손님 세 명에게 책을 팔았다. 김 대표는 170종, 1100권을 다마스에 실었고, 지금까지 400권 가까이 팔았다. 생계에 대해 묻자 “최대한 절약해서 산다면 직장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2년 정도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노점상이라고 누가 신고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파는 물건이 책이라서 그런지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다만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냐고 다들 한마디씩 물어보고, 훈수까지 둘 땐 좀 괴롭죠. 돈을 못 버는 게 뻔히 보여선지 신고도 안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북다마스로 돈 못 버는 걸 알고 시작했고, 지금도 후회 없어요. 이렇게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흐려졌던 것도 뚜렷해지고, 보이지 않는 길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