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인성

환경부는 1년 전 카페·식당 등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같은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일회용품을 줄이려면 안 쓰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무작정 금지하면 생활 현장에서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1년 계도 기간’을 두고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환경부는 7일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금지가 이행하기 가장 어려운 조치로 파악됐다”고 했다. 종이컵 금지의 경우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 매장은 적응할 수 있지만 ‘1인 매장’ 등 소상공인 매장은 다회용컵을 일일이 씻거나 세척기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종이컵 금지를 바로 철회했다. 소형 카페 운영자는 “손님이 몰리면 주문받아 음료를 담기도 바쁘다”며 “다회용컵을 씻을 시간도 없고, 과태료 300만원은 너무 큰돈”이라고 했다.

환경부가 지난 1년간 시범 실시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지 사용 금지를 철회한다고 7일 밝혔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부담과 소비자 불편을 고려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을지로 한 식당의 식탁에 놓인 종이컵. /연합뉴스

환경부는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2.5배 비싼데도 소비자 만족도는 낮았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종이 빨대를 쓰면 금세 축축해지거나 음료 맛을 변질시킨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한 소비자는 “종이 빨대가 녹으면 음료와 종이를 같이 먹는 느낌”이라고 했다. 종이 빨대가 녹아 부러지면 음료를 옷에 흘리는 일도 생긴다. 환경부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무기한 연장하는 방식으로 금지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플라스틱 빨대 대체품 개발과 유엔 플라스틱 협약 등 국제사회 동향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마트·편의점, 빵집 등에서 사용 금지하려던 비닐 봉지도 계속 쓸 수 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대형 편의점 5개 업체가 상반기 사용한 봉지 70%가 ‘생분해성’이고 23.5%는 ‘종량제 봉투’, 6.1%는 ‘종이 봉투’로 집계됐다. 썩지 않는 일회용 비닐 봉지는 최근 사용되는 일이 거의 없는 만큼 규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한 편의점 업주는 “손님 보고 ‘봉지 없으니 무엇을 사든 손에 들고 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은 바꾸는 게 옳다”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반면 환경보호를 위한 일회용품 줄이기가 필요한 상황에서 환경부가 대안을 내놓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8년 기준 국내에서 소비된 종이컵은 294억개로 집계됐다. 전체 생활 폐기물 2000만t 중 0.5% 수준이다. 환경부는 종이컵 규제를 풀면서 “음료가 담기는 안쪽 면만 코팅된 컵은 코팅을 벗겨내고 종이 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다”며 “종이컵 분리 배출로 재활용률을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종이컵 안팎을 모두 비닐 코팅한 제품은 재활용이 어렵다. 현재 종이컵 재활용률은 13%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플라스틱 빨대의 경우 사용을 금지하는 국가가 적지 않다. 뉴질랜드는 올해 7월부터 못 쓰게 했다. 종이와 달리 플라스틱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플라스틱 줄이기에 번번이 헛발질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할 때 컵 보증금으로 300원을 받았다 돌려주는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추진했다가 소상공인과 소비자 불만에 사실상 철회한 적도 있다. 또 보증금제는 ‘음료를 판매하는 매장 수 100개 이상인 가맹 사업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음식 배달 등 일회용 플라스틱을 더 많이 쓰는 업종은 규제할 수가 없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이날 “지금의 일회용품 규제 대책은 지속 가능성이 작다”며 “규제와 강제만으로는 변화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어 “다회용컵 마련 등 일회용품 줄이기를 미리 준비한 분들께 송구하다”며 “미리 준비하느라 비용을 쓴 사업자에 대해선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