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샌 빈센테(San Vincente) 댐’. 만성적 물 부족에 시달리는 지역이라 댐으로 물길을 막고, 수문 아래로는 물을 흘려보내지 않고 있었다. 댐이 만든 소양호(湖) 크기 저수지에선 주민들이 낚시와 요트를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샌디에이고 수자원청의 제프리 쇼프 수석 엔지니어는 “수량 확보가 우선이라 물을 최대한 가두고 있다”며 “수요에 맞게 물을 내보낸 뒤 정수 처리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댐 높여 리모델링 - 샌 빈센테 댐은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표적 물 부족 지역인 샌디에이고에 높이 67m·저수 용량 1억110만t 규모로 건설됐다(왼쪽 작은 사진). 그러다 1991년 최악의 가뭄을 겪으며 기후변화에 대비, 증축을 결정해 2014년 높이 102.7m·저수 용량 2억9900만t 규모로 리모델링됐다(큰 사진). 댐 리모델링은 약 10년이 지난 현재 이 지역에 가뭄·홍수 위험이 번갈아 닥치면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수자원청

1943년 완공된 샌 빈센테 댐은 ‘200년 빈도 극한 강우’(200년에 한 번 내릴 가장 많은 비)에 맞게 설계됐다. 그러나 1991년 캘리포니아주에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주정부와 주민들은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증축을 결정했다. 2014년 댐 높이는 67m에서 102.7m, 저수 용량은 1억110만t에서 2억9900만t으로 리모델링했다. 댐 증축에 4억5500만달러(약 6077억원)가 들어 당시엔 “과잉 투자”라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댐을 키운 효과는 10여 년 후 나타났다. 작년 캘리포니아에 닥친 가뭄에도 생활·공업용수가 마르지 않았다. 이수(利水)에 성공한 것이다. 이 지역에 84년 만에 대형 허리케인 ‘힐러리’가 상륙했을 때는 홍수를 막는 역할을 했다. 치수(治水)에도 효과를 본 것이다. 가뭄에 대비해 손본 댐이 예상치 못한 대규모 홍수 위기까지 막아냈다. 비가 내리지 않아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이 붙은 샌디에이고 데스 밸리(Death Valley)에는 최근 홍수주의보 팻말이 꽂힐 만큼 기후변화가 거세지고 있다. 샌 빈센테 댐의 리모델링은 전 세계적 기후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사례로 꼽힌다.

그래픽=김의균

샌 빈센테 댐 리모델링에는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의 요구도 작용했다. 의약품을 개발하려면 물이 필수적인데 기존 댐 용량만으로는 생활용수를 공급하기에도 벅찼던 것이다. 갈수 지역인 샌디에이고에 터를 잡은 기업들은 “댐을 높여 수량을 확보해 달라”고 오랫동안 요청해 왔다. 그러다 가뭄을 계기로 물 확보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면서 댐 리모델링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그 결과 현재 샌디에이고 지역에 1500여 바이오 기업이 자리 잡게 됐고, 특히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도시 전체가 급성장하게 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3년 ‘4대강 사업’ 후 댐을 손보거나 신규 댐을 짓는 치수 대책이 전무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댐을 지어 달라”는 지자체 요청을 받아 전국에 신규 댐 12개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 주도 댐 건설 중단을 선언하고 멀쩡한 4대강 보(洑) 해체까지 결정했다. 치수 사업에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다. 당시 신규 댐 건설이 유력했던 포항 항사댐의 경우 댐 건설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작년 9월 태풍 ‘힌남노’ 때 냉천이 범람하며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산업단지에 공급할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당초 한강 수계인 소양강댐과 충주댐에서 물을 공급받아야 하지만, 저수 용량 한계로 물이 부족해 강원도 화천댐에서 물을 끌어와야 할 형편이다. 용인에서 쓸 물을 강원도에서 끌어오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올봄까지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던 남부 지방은 지난 장마 기간 극한 강수로 홍수를 겪어야 했다. 한 해 동안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나타나는 ‘극한 기상’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미국 샌 빈센테 댐처럼 우리도 댐 리모델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국내 댐 리모델링 사례는 운암댐이 유일하다. 1928년 농업용수 공급용으로 만들어진 높이 33m 댐을 1965년 수력발전까지 가능하도록 높이 64m, 길이 344.2m, 총 저수 용량 4억6600만t의 섬진강댐으로 증축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