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이제 학교에서 ‘잔반 안 남기기’ 안 할래요!”

학교 조리실에서 남은 새 음식을 통째로 버리는 모습을 보고 온 딸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어려서부터 음식 남기지 않기를 열심히 실천해 온 아이는 ‘멀쩡한 음식을 저렇게 많이 버리는데 그동안 내 노력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며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환경 캠페인이 넘쳐 나는 시대인데, 정작 삶의 현장에선 쉽게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재활용을 잘 하려면 분리배출이 중요하다. 예컨대 우유팩은 침엽수로 만드는 최고급 펄프다. 분리배출만 잘 해도 키친타월, 티슈 같은 고급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일반 종이류와 함께 버리면 재활용이 불가능해진다. 국내 종이팩 수거율은 2013년 35%, 2018년 22%, 2020년 16%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재활용 제품을 만들기 위해 우유팩 쓰레기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재사용은 재활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자원 순환이다. 오래 쓰고, 다시 쓰는 것이다. 자원 순환이 자리를 잡으려면 생활의 모든 순간에서 ‘기후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현실은 리유저블컵을 일회용 컵으로 쓰는 카페, 에너지 잔뜩 먹는 인덕션을 설치한 탄소 중립 학교 등 ‘이름만 친환경’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쓰는 모든 재화는 생산과 운송, 사용, 폐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탄소 감축의 본질은 투입하는 에너지, 사들이는 자원, 배출하는 쓰레기 총량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저감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해 철저한 진단과 성찰, 그에 맞는 실행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결국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제품 생애 주기에 걸쳐 보다 환경적인 것에 지갑을 열어야 한다.

단지 기술만으로 기후위기가 해결될 것이란 낙관론은 위험하다. ‘기후 테크’는 최근 각국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에서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전 세계 여러 기후 테크 스타트업들이 기후 재난 예측과 탄소 상쇄, 배출량 관리, 재생·대체에너지 설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글로벌 투자사들도 기후 테크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전 세계에서 벤처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42% 감소했지만, 기후 테크 벤처 투자는 89%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전국적으로 ESCO(Energy Service Company) 사업 등을 통해 지난 15년간 LED 전구 교체, 친환경 건축물 등 건물 에너지 합리화 사업을 진행했다. 재생에너지도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지 않았다. 에너지 효율을 높여 1등급 가전제품을 만들고, 연비 좋은 자동차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더 큰 것을 사거나 여러 개를 사는 ‘리바운드 효과(Rebound Effect)’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 구성원 숫자가 줄고 외식이 많아졌지만, 냉장고 종류는 다양해지고 크기도 커지고 있다.

하지원 대표

“지구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하면 인간은 마지막 0.2초 동안 지구 천연자원 3분의 1을 사용했다”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말했다. 0.2초는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 시간이다. 기후위기 문제는 과도하게 풍요로운 삶에서 기인한다. 기후위기 시대, 탄소 중립을 해결할 주인공은 바로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