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제주시 제주기상청사 내 귤나무 앞에서 ‘제주기상 100년사’ 책을 손에 든 전재목 청장. /제주지방기상청

“제주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고 중심에 한라산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운 곳이죠.”

제주도 출신도 아니면서 숱한 ‘제주도민 맞춤 예보’를 개발한 전재목(59) 제주지방기상청장이 정년 퇴임을 앞두고 최근 기상청 직원들과 ‘제주 기상 100년사’란 책을 펴냈다. 그는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제주에 ‘마가둠’(장마가 그침) ‘마가지’(장마가 그치고 조 농사 짓기) 등 날씨와 연관된 언어가 발달한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라며 “1923년 5월 제주읍성 쾌승정 터에 문 연 ‘제주측후소’ 시절부터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제주기상청과 제주 날씨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그는 제주기상청에서 ‘제주 사람보다 제주를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16년 전 제주기상청 예보관으로 발령 나 3년간 제주에서 생활했고, 재작년 7월 제주기상청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청장이 된 후 제주기상청엔 ‘도민 맞춤형 서비스’가 여럿 시작됐다. 그해 12월부터 ‘제주 밭작물 맞춤 기상 정보’를 월동 작물 농가에 배포했다. 따뜻한 제주도에선 무·당근·브로콜리 따위 채소가 겨울에도 잘 자란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최근 서리 피해가 급증하자, 작물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서리 발생 하루 이틀 전 농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또 절기(節氣)마다 농사지을 때 조심해야 하는 위험 정보를 담은 ‘제주 농민 맞춤형 기후 달력’을 만들어 농가 및 관계 기관 500여 곳에 뿌리기도 했다.

바다 바로 옆은 바람이 너무 거세 제주 사람들은 한라산과 바다 사이의 ‘중산간(해발고도 200m 이상 600m 미만)’ 지역에 많이 산다. 이 점에 착안해 해발고도에 따라 예보 구역을 세분한 ‘중산간 예보’를 작년 11월부터 최초로 시행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이전까지 제주 육상 특보 구역은 제주도 산지, 제주도 동·서·남·북, 추자도 등 6곳이 전부였는데, 북부·남부 중산간이 더해지며 사람들 정주 여건과 직결된 예보가 추가됐다. 그는 “제주기상청 예보관 시절 직접 겪었던 불편함이 이런 기상 정보 서비스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제주기상 100년사'를 집필한 제주기상청 직원들. (윗줄 왼쪽부터) 강영범 과장, 강동훈 주무관, 강동현 주무관, 안연식 주무관, 유용규 과장, (아랫줄 왼쪽부터) 배재은 주무관, 서민아 주무관, 시미정 주무관, 김길엽 사무관, 전재목 청장, 이다경 주무관, 김병관 과장. /제주지방기상청

이번 책은 여러 제주어(語)를 비롯해 혹독한 태풍과 장마가 물러가길 바라며 지내는 마을 당굿 ‘마불림제’ 등 기상과 관련된 제주의 역사·문화 이야기로 200여 페이지가 채워져 있다. 이 책은 오는 6월을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나는 전 청장이 제주도에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다. 오는 4월 28일 ‘제주기상청 100주년 기념식’을 도민들과 떡을 나눠 먹는 행사로 기획 중인 그는 “퇴임 직전까지 또 다른 예보 서비스를 발굴하는 게 목표”라면서 “제주 사람보다 제주를 더 많이 사랑한 청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