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이천 죽당천 상류. 하천가의 빽빽한 수초 사이로 송사릿과 열대어 ‘구피(guppy)’가 헤엄치고 있었다. 물살이 약한 곳엔 구피 치어 30~40여 마리가 몰려 있었다. 다 자라면 몸길이가 3~6㎝ 정도인 구피는 중앙아메리카·남미북부·브라질 등에 분포하는 어종으로, 주로 22~28도의 따뜻한 물에서 산다. 수온이 15도 밑으로 떨어지면 움직임이 둔해지며 폐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구피가 우리나라 하천에서 2월에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이천 지역의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4도였다.

이곳에 구피가 살 수 있는 것은 약 300m 떨어진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단지에서 방류된 따뜻한 공업용수가 하천 수온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구피가 발견된 지점의 수온은 23도 수준. 공업용수가 쏟아지는 배수구 주변에서는 따듯한 물이 차가운 공기와 만나 물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김수환 국립생태원 외래생물팀 선임연구원은 “자연적인 하천이었으면 수온이 5~7도 정도여서 구피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오전 경기도 이천의 죽당천 상류에서 잡힌 열대어 ‘구피’ 치어들./조유미 기자

◇예쁘다고 키우다 버려지는 구피

죽당천에 구피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2018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되며 처음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관상용으로 키우다 버려진 개체가 군락을 이룬 것으로 추정한다. 구피는 많을 땐 한 달에 새끼를 150여 마리 낳을 정도로 번식력이 좋다. 구피는 온라인에서 마리당 1만원 이하로 손쉽게 살 수 있는데, 예쁘다고 사서 키우다가 번식력이 감당 안 돼 하천이나 연못 등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관상어협회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관상어 총 500여 종 중 가장 많이 들어오는 개체를 구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버려진 구피들은 죽당천처럼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곳에서만 일부 살아남을 수 있다. 울산 남구 여천천에서는 2019년부터 중·상류 약 3㎞ 구간에서 구피 떼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많을 땐 약 10만 마리까지 발견됐다. 환경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살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가정에서 나온 따뜻한 생활하수(汚水)가 일부 유입되며 구피가 살기 적합한 수온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티즌들은 구피가 사는 하천을 흔히 ‘구피천(川)’으로 부르기도 한다. 죽당천·여천천 말고 다른 하천에서도 구피를 봤다는 목격담이 종종 나온다.

지난달 17일 오전 경기도 이천 죽당천 상류의 수온은 23도 수준이었다. 이날 이천 지역의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4도였다./조유미 기자

◇매년 살고 죽고 반복… 무책임한 방사 말아야

생태계 교란을 가져오거나 우려가 있는 외래종은 위험성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환경부에 따르면, 구피는 생태계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없거나 낮은 위해성 3등급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외래종이 우리나라 생태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종 상관 없이 방사 행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관상어 무단 방류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적발되면 벌금 300만원이 부과된다.

죽당천 인근에서 열대어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겨울에 쌓인 눈이 녹으며 일시적으로 수온이 떨어지면 구피들은 대부분 죽는데, 봄이되면 일부 살아남은 개체가 사람들이 방사한 개체와 합쳐져 번식하며 살고 죽고를 매년 반복한다”고 했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라며 방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합한 환경이 아닌 곳에서 몰살에 가깝게 폐사했다가 번식하는 건 생물을 위한 것도 아니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오전 경기도 이천의 죽당천 상류에서 잡힌 열대어 ‘구피’ 치어들./조유미 기자

◇수온 높은 물 방류 우려하는 시각도

일각에서는 열대어가 일부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수온이 상대적으로 높은 물이 우리나라 하천에 지속적으로 방류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어류는 바깥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變溫) 동물로 종마다 버틸 수 있는 최대 내성 온도가 있는데, 서식지의 온도대가 달라지면 원래 살던 토착 어종이 해당 지역에서 점차 살 수 없게 되며 먹이 사슬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진호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단순히 토착 어종이 차가운 수온의 하천으로 이동해 살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며 “해당 어종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을 때 먹이 조건이 맞지 않으면 결국 살아갈 수 없고 생태계가 교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