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광주광역시 주 식수원인 동복호. 평소 물로 가득 차 있을 댐이 바닥을 드러냈다. 2월 15일 기준 저수율이 22%대다. /김영근 기자

지난 16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정수장 인근. 영산강 하천수를 끌어오는 1.5km 길이 관로(管路)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정수장의 원래 취수원은 동복댐인데 극심한 호남권 가뭄으로 댐의 수위가 낮아지자 추가로 물길을 만드는 것이다. 하루 최대 5만톤의 물을 끌어오는 이 사업에는 세금 3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영산강 권역 시민으로부터 걷은 ‘영산강 수계(水系)기금’ 여유분 529억원은 한 푼도 쓰이지 않았다. 수계기금은 ‘수질 개선’에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는 법 때문이다.

남부 지방에서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4일 전남 화순 동복댐 주변으로 바닥이 드러나 있다. /김영근 기자

22일 환경부에 따르면 이처럼 잠자고 있는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수계기금이 2399억원에 달한다. 1999년 도입된 수계기금은 수도 요금에 붙는 ‘물이용부담금’에서 일부를 떼서 조성한다. 공공수역의 물을 쓴 최종 수요자가 부담한다. 강에서 원수(原水)를 끌어다 공업 용수로 쓰는 기업, 강물을 정수(淨水)해 수돗물로 공급받는 가정 등이 해당돼 거의 모든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물 사용량과 비례해 부과되고 금액은 톤당 170원이다.

광주광역시가 대체 수원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식수전용댐인 동복댐의 용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도록 영산강 덕흥보 주변 물을 용연정수장에 공급하는 비상도수관로를 설치하는 공사가 지난 14일 광주 동구 선교동 교동교 인근에서 진행 중이다. /김영근 기자

물 관리 주체가 환경부·국토부로 이원화돼 있던 2018년 이전까지는 환경부가 ‘수질’, 국토부가 ‘수량’을 관리했다. 환경부 소관이던 수계기금도 당연히 수질 관리에 쓰였다. 그런데 2018년 물 관리 주체가 환경부로 통합됐는데도 수계기금 용처는 여전히 수질 관리로 한정돼 있다. 수계기금법을 그대로 놔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가뭄이나 홍수가 발생할 경우 관련 대책에 비용이 들어갈 때 이 기금을 쓰지 못한다. 조성된 수계기금을 활용하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세금을 투입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환경부가 세금을 활용하려면 기재부에 추가 예산을 요청해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심사 등에 시간이 걸려 대책 이행이 지연된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가뭄이 심각한 호남권에서 앞으로 추가 관로 확충 공사가 필요할 경우 예산 문제로 발이 묶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지적되자 수계기금 용도를 ‘수질 개선’에서 ‘물 관리 전반’으로 확대하는 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김창수 부경대 교수는 “기후변화로 가뭄·홍수 등 물 피해가 늘어나는 양상인 만큼 수계기금이 상황에 맞게 쓰일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