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교 급식실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종사자 가운데 18%가 폐암·폐결절 등 폐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리 과정에서 발생한 ‘요리 매연’ 때문에 폐암 등 질병으로 산재(産災)를 인정받은 급식 종사자가 최근 50명에 이른 것으로 확인됐다. 굽거나 튀기는 요리를 할 때 발생하는 초미세 먼지(PM2.5)는 요리 매연의 원인이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 물질이다.

대규모 조리가 이뤄지는 급식실은 환기 시스템이 갖춰져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에 요리 매연 저감에 대한 과학적 기준은 없어 장기간 요리 매연에 노출될 경우 급식노동자가 폐 관련 질환을 앓을 위험이 큰 상황이다. /뉴스1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요리 매연을 산재 원인으로 처음 인정한 작년 2월부터 올 10월까지 요리 매연으로 인한 폐 질환으로 산재를 신청한 급식 노동자는 75명이며 이 중 66.7%(50명)가 산재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들이 고온의 튀김·볶음·구이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요리 매연에 장기간 노출됐고, 이런 조리 행위가 폐암 등의 발생 위험도를 높인다”고 판단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올해 말까지 ‘근무 경력 10년 이상’ 또는 ‘55세 이상’인 학교 급식 종사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 전수 조사를 실시 중이다. 교육부가 파악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구·경북·울산·광주·전남·충남 등 6개 교육청이 검진 결과를 교육부에 제출했는데, 검진을 마친 8946명 중 18.3%(1634명)가 폐결절 등 폐 관련 이상 소견이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61명(0.68%)은 폐암에 대한 ‘의심’ ‘매우 의심’ 소견이 나왔다. ‘2019년 국가암등록 통계’에 나온 우리나라 평균 폐암 발병률인 ‘10만명당 58.4명(0.058%)’보다 11배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는 요리 매연에 대한 과학적 환기 기준 등이 없어 급식 종사자는 폐 질환을 비롯한 각종 질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기름을 고온으로 끓일 때 산화하며 나온 발암성 물질이 연기와 섞여 요리 매연이 생성되고, 이게 호흡기를 통해 들어와 장기간 폐에 흡착하면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산재를 인정했다. 밀폐된 공간에 환기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안전보건공단이 작년 11월 전국 10개 학교를 골라 조리실 환기 장치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8곳에서 후드(hood·공기배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해외에선 요리 매연을 심각한 초미세 먼지 발생원(源)으로 간주한다. 미국 대기오염 국책연구기관인 CE-CERT연구소에 따르면, 햄버거 패티 1장을 구울 때 발생하는 초미세 먼지는 대형 덤프트럭이 시속 230㎞로 달리면서 내뿜는 양과 비슷했다. 덤프트럭 매연은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라도 하지만, 요리 매연은 좁은 조리 공간에 머물다 상당량이 호흡기로 들어간다.

미국 뉴욕시에선 작년 1월부터 대기환경법에 요리 매연을 관리 대상에 포함했다. 뉴욕시에서 일주일에 397kg 이상 고기를 소비하는 레스토랑의 경우 의무적으로 요리 매연 저감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박찬승 미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미국은 학교에서 샌드위치처럼 불을 많이 쓰지 않는 음식을 주로 먹다 보니 단체 급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상업용 식당들의 직화구이가 도심 요리 매연의 큰 문제로 부각돼 레스토랑부터 규제 적용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신상진 성남시장. /조선DB

우리나라는 뒤늦게 요리 매연의 위험성에 주목하는 상황이다. 경기 성남시가 1일 전국 최초로 학교·식당 등에 요리 매연을 저감할 수 있는 장비를 기초단체 지원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미세 먼지 관련 조례 개정을 예고했다. 의사 출신인 신상진 시장은 “요리 매연 문제가 저감 장치 설치 등으로 개선이 가능한 만큼, 학생들 곁에서 오랫동안 노력해온 급식조리사 분들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고 했다.

김조천 대기환경학회장은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론 급식실, 직화구이 식당 등 요리 매연이 다량 배출되는 시설을 ‘대기오염 배출시설’로 규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