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수력원자력이 북한의 ‘EMP(전자기파) 공격’에 대비해 국가정보원이 요청한 원전 안전 평가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이행했던 한수원이 전시 상황에서의 원전 안전 대책에 손 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기기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입히는 EMP탄. /방사청

10일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 한수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국정원과 산업부가 ‘EMP 취약점 분석·평가 기준’에 따라 2019년 3월부터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공공 분야 주요 정보통신 기반 시설 대상 EMP 시범 평가’에 참여하지 않았다. EMP 공격은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전자 기기를 무력화한다. 원전에 가해질 경우 제어 장치가 작동 불능 상태에 빠져 원자로가 폭발하거나 방사선이 유출될 수 있다. 미 전력연구소는 2019년 1월 보고서에서 “북한의 EMP 공격으로 전력망이 파괴되면 1년 안에 미국인 90%가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작년 6월 ‘북한 EMP 위험 평가 보고서’에서 “북한은 초강력 EMP 탄 개발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한수원은 국정원 요청을 거부하면서 “EMP 공격을 받아도 국내 원전의 차폐(遮蔽) 효과는 충분하다”는 내용의 연구 용역 보고서를 근거로 댔다. 한수원은 2014년 8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가동 원전 EMP 영향분석 및 대책수립’ 연구 과제를 수행한 바 있다. 해당 연구 결과는 2019년 2월 문 정부 당시 꾸려진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에만 보고됐다. 하지만 한수원은 어떤 방호 대책이 수립돼 있는지 공개하라는 국회 요청에 대해 “EMP 관련 연구 보고서는 비밀문서로 관리 중”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반면 한국전력 산하 중부발전·서부발전 등 화력발전소는 국정원에서 받은 EMP 평가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이 북한의 현대화된 EMP 공격에서 100% 안전하다는 한수원 결론을 믿어도 되느냐”고 우려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노후 원전일수록 고압·진동·전자기파에 취약할 수 있다”며 각국 원전에 지속적인 보수를 권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

최 의원은 “우리 에너지 시설에 대한 북한의 EMP 공격이 발생할 경우 무방비 상태”라며 “EMP 공격에 대한 국가 기간 시설의 구체적 방호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부는 “국정원이 수립 중인 ‘EMP 보호 대책 가이드라인’이 확정되면 시설별 중요도와 추가적인 방호 필요성을 종합 검토해 에너지 기반 시설에 보호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