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최근 “부채 감축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서울의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국토교통부에 보고한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공공기관 혁신’을 주문하자, 부채가 18조원이 넘는 코레일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자구안을 국토부에 보고한 것이다.

용산정비창 부지

◇부지 팔아 18조 부채 감축 시도

코레일의 부채는 작년 기준 18조6608억원이다. 부채 비율(287.3%)이 전체 공공기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코레일은 지난 20일 기획재정부가 130개 공공기관을 조사해 발표한 경영실적 평가에서 최하 등급인 ‘아주 미흡(E)’ 등급을 받았는데,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부채 과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튿날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혁신을 더 미룰 수 없다”고 하자 코레일이 가장 큰 단일 자산인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지적이다.

용산정비창 부지는 서울 용산역 뒤편의 51만2138㎡(15만921평) 면적의 나대지다. 전체 부지의 70%인 35만9516㎡(10만8753평)가 코레일 소유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유일하게 남은 대형 개발 가능 부지여서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 불린다. 더구나 최근 용산 지역은 대통령실이 들어섰고, 미군 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돼 있어 부동산 시세가 상승하고 있다. 코레일은 자사 소유 용산정비창 부지의 매각가가 4조~5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만일 이대로 부지를 매각해 부채 탕감 용도로 쓴다면 부채를 25% 정도 줄일 수 있다. 코레일 내부에서도 “실질적인 부채 감축 방법은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이 유일하다”는 말이 많다.

◇'금싸라기 땅’ 이번엔 팔릴까

코레일은 2007년 본격화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과정에서 용산정비창 부지 매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용산정비창 부지와 인근 서부이촌동을 묶어 이곳을 아파트와 금융·IT(정보기술) 기업 등이 밀집한 업무 지구로 조성한다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발표했었다. 코레일은 당시 용산정비창 부지를 5조원 정도에 이 사업 민간 시행사였던 드림허브에 매각했다. 그런데 이듬해 닥친 금융 위기로 2013년 드림허브가 부도가 나자 이 사업은 물론 부지 매각도 무산됐다.

코레일이 이번에도 수조원짜리 용산정비창 부지를 매각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정부 내에서도 “개발 허가도 나오지 않은 4조~5조원짜리 나대지 10만평을 한꺼번에 살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과 “희소성이 큰 토지이고 향후 시세 상승 가능성이 높아 매각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견이 갈린다.

◇부채 감축 對 주택 공급

결국 용산정비창 매각은 현 정부가 코레일의 ‘부채 감축’과 서울 시내 ‘주택 공급’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는지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산정비창 부지의 매각은 코레일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 땅은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주택 개발이 가능한 알짜 부지여서 문재인 정부도 이곳에 아파트 1만 가구를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이곳에 청년주택 등을 건설하는 방안이 검토됐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땅을 주택 공급 용도로 개발할지, 부채 탕감을 위해 일단 매각할지 여부에 따라 부동산 시장은 물론 여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며 “현 정부가 정책적·정무적 판단을 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서울시도 용산정비창 부지 개발 계획을 짜고 있다. 서울시는 이 부지의 개발 인·허가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가 이 땅의 활용 방향에 합의를 해야 매각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