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반달가슴곰이 급격하게 늘자 환경부가 당초 지리산 일대로 국한했던 반달곰 서식지를 덕유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작년부터 추진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반달곰 서식지가 확대되면 등산객과 인근 민가 지역 주민의 안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데도 공청회 등 의견 수렴 절차는 거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31일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는 반달곰은 모두 79마리로 늘어났다. 2004년 러시아에서 처음 들여온 ‘1세대 곰’의 증손자 격인 새끼 곰이 태어나는 등 야생 증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2004년 시작된 반달곰 복원 사업은 등산객과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최소 보존 개체’인 50마리로 늘어날 때까지 서식지를 지리산으로 한정해 추진됐다.

현재 반달곰 개체수는 지리산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지리산 내 먹이 자원, 서식 위협 요인 등을 고려한 반달곰 개체수는 64마리가 최적, 78마리가 최대다. 그런데 확인된 것만 현재 79마리이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개체까지 더하면 이보다 훨씬 웃돌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민가 피해도 커지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반달곰의 양봉업장 습격, 기물 파손 등 민가 피해는 2019년 14건, 2020년 38건, 2021년 41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환경부는 2002년 반달곰 복원 계획 수립 당시 2020년까지 ‘최소 존속 개체군’인 50마리를 지리산 일대에 한정해 번식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소 존속 개체군은 환경적·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질환·자연재해 등을 겪어도 향후 지속적으로 반달곰이 야생에서 존속할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최소 보존 개체수 이상으로 반달곰 숫자가 늘어나자 환경부는 작년 4월 말 지리산으로 한정했던 서식지를 2030년까지 덕유산 일대로 확대한다는 새로운 계획을 만들었다. 그런데 환경부는 이 같은 사실을 언론 등에 전혀 알리지 않고 사실상 비밀리에 추진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서식지 인근 민가 습격 등 덕유산 인근 주민 등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가 있지만 이 같은 반달곰 서식지 확대 계획을 공식 발표하지도 않았다. 서식지 확대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생략됐다. 환경부 측은 “당시 담당 사무관 자리가 공석이라 발표를 놓친 것 같다”고 했다.

환경부는 서식지 확대가 확정된 지 1년여 뒤인 이날 “수컷 반달곰 4마리가 지리산을 벗어나 덕유산에서 활동·동면하다가 교미할 때가 되면 지리산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며 “덕유산에 불법 사냥 도구 등을 제거하고, 암컷을 인위적으로 들여보내 곰들이 완전히 정착하게 하겠다”고 했다. 곰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덕유산 인근 주민들에 대한 대책으로는 “양봉이나 농작물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전기 울타리 설치 등을 늘려가겠다”고 했다. 정작 곰 서식지 확대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덕유산 주변 주민들은 강제로 곰과의 공생을 강요받게 된 셈이다.

환경부는 “반달곰은 예부터 사람과 가까이 살았던 동물이고, 사람을 잘 공격하지 않고 피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며 “곰과 마주칠 가능성은 작지만 만약 맞닥뜨리게 되면 조용하고 신속하게 자리를 뜨면 된다”는 입장이다. 한 야생 동물 전문가는 “반달곰이 인간을 피하는 일반적 습성은 있지만 결국 맹수라 안전을 속단할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