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서 규모 4.9의 지진이 발생했다. 올해 한반도와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 중 최대 규모다. 제주도에서는 ‘쿵’ 소리와 함께 건물이 수초간 흔들렸고 전남과 광주, 전북, 경남 등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이날 오후 9시 기준 전국에서 지진 감지 신고가 169건 들어왔고, 유리창이 깨지거나 바닥이 기울어졌다는 경미한 피해 신고도 3건 접수됐다.

"지진이다" 건물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 -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서 규모 4.9의 지진이 일어난 14일 오후 제주도교육청 직원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공식 관측 이후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는 가장 크고, 한반도를 통틀어서는 공동 11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제주도에서는 건물과 가구가 흔들린다는 주민 신고가 잇따랐고, 전남·광주·경남 등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 /제주도교육청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은 이날 오후 5시 19분 제주 서귀포시에서 서남서쪽으로 41㎞ 떨어진 바다에서 발생했다. 진원 깊이는 17㎞로 분석됐다.

이번 지진은 1978년 공식 관측 이후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는 가장 크고, 한반도 전체로는 역대 11번째 규모다. 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2016년 9월 경북 경주 지진(규모 5.8), 2017년 포항 지진(규모 5.4) 이후 국내에서 4년여 만에 발생한 큰 지진이다.

기상청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지진해일(쓰나미) 발생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지진의 형태가 위아래가 아니라 수평으로 움직이는 지진이었고, 규모도 그만큼 크지 않아서다. 다만 앞으로 수개월 동안 계속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기상청은 전했다. 이날 오후 본진(本震) 이후 약 2시간에 걸쳐 1.5~1.7 규모의 여진이 9차례 발생했다.

이날 오후 5시 19분 지진이 발생하자 제주 전역에서 강한 흔들림이 감지됐다.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강력한 지진의 위력 앞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서귀포시에 거주하는 이모(49)씨는 “갑자기 건물이 3~5초가량 흔들렸다”며 “지진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대정읍 한 식당에선 ‘쾅’ 소리가 나자 손님들이 놀라 급히 대피했다. 모슬포 시장 상인은 “건물이 바이킹 타는 것처럼 좌우로 흔들렸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주시 노형동 주민 정기선(60)씨는 “화장실에 있었는데 변기의 물이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라고 했다. “의자가 덜덜 흔들리며 떨렸다” “아이들이 울면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진앙과 가까운 제주 가파도와 마라도에서는 큰 진동과 흔들림이 감지됐다.

서귀포시 제주신라호텔은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을 했고, 직원들이 객실 문을 일일이 두드리며 투숙객들의 대피를 도왔다. 호텔 관계자는 “투숙객을 모두 대피시키는 데 1시간가량 걸렸다”며 “상황이 안정된 이후에도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밖에 머무른 사람이 상당수”라고 했다.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면세점에 있던 관광객들은 진동을 감지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 치료 중이거나 자가 격리 중인 시민들도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제주 지역 자가 격리자는 이날 오후 5시 현재 1348명이다.

이날 제주 지역 모든 학교 학생과 교직원은 긴급 귀가했다. 제주공항에선 활주로 점검을 위해 출발·도착 항공편이 10여 분간 중단됐다. 이날 제주소방본부에는 100여 건의 문의와 신고 전화가 빗발쳤다. 제주도는 지진 발생 11분 후인 오후 5시 30분 ‘도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 2단계 근무’를 발령하고, 지진 위기 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와 제주지방항공청, 교육청, 경찰청, 해양경찰청, 한국전력공사, 해병대 9여단 등이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24시간 비상 근무에 돌입했다. 구만섭 제주도지사 권한대행은 읍면동별 지역 내 기반 시설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대응 체계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또 독거 노인과 노후 건축물 거주자 등 안전 취약 계층 대상으로 지진 피해 현장 조사를 철저히 해줄 것을 당부했다.

광주광역시 주민들이 지진을 느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모(55)씨는 “재난 경고 문자가 뜨고 2~3초 뒤 집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날 광주광역시 소방본부에는 지진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와 신고가 20여 건 접수됐다. 제주와 가까운 전남 목포, 해남, 진도 등 전남 지역에도 30여 건의 신고가 몰렸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최근 제주도 해역에서 규모 2~3 수준의 지진이 자주 관측됐는데, 작은 지진이라도 빈도가 높으면 큰 지진이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며 “앞으로도 이번과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