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달가슴곰이 나무에 올라가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국립공원공단 제공

울산의 한 농가에서 불법으로 기르던 반달가슴곰 3마리가 탈출했다가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는 60대 농가 주인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 부부가 곰의 습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농가에서는 작년 5월에도 키우던 곰 한 마리가 탈출해 소동이 일었다. 환경당국은 지난해 탈출한 곰이 이번에 사살된 3마리 중 한 마리로 보고 있다.

9일 울산소방본부와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37분쯤 소방 당국에 “부모님이 몇 시간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숨진 부부의 딸이었다. 신고를 접수한 소방대원들은 부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울산시 울주군의 농가로 출동했다.

농가에서 곰 3마리를 발견한 소방대원들은 신고한 딸과 연락해 이 부부가 농가에서 곰을 키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방대원들은 엽사와 함께 이날 오후 11시 33분쯤 곰 3마리를 사살했다. 사살된 곰은 4~5년생 반달가슴곰으로 확인됐다.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은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사살된 반달곰. /뉴시스

부부는 사육장 앞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부부가 심각한 외상을 입은 점, 사육장의 철문이 열려 있는 점 등을 토대로 이 부부가 곰의 습격을 받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곰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은 울주군은 이날 오후 11시 25분쯤 농가 인근 주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농가에서는 작년 5월에도 곰 한 마리가 탈출했다가 5시간여 만에 포획되기도 했다. 환경당국은 작년 10월 농가 주인 A씨를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법원은 지난 1월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A씨는 2018년부터 반달가슴곰 4마리를 길렀다. 반달가슴곰을 기르려면 환경부에 등록해야 하지만, A씨는 등록 없이 불법으로 곰을 길렀다.

A씨가 곰을 기른 이유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생전 환경당국 관계자 등에게 “곰을 사랑해서 키운다”고 말했다고 한다. 웅담 채취 등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환경당국도 이 농가에서 웅담을 채취한 정황을 확인하진 못했다. A씨는 법원에서도 “단순히 관람용으로 곰을 길렀다”고 주장했다.

A씨는 벌금형까지 받았지만 계속 곰을 기르다 변을 당했다. 환경당국은 지난해 5월 탈출한 곰이 이번에 사살된 곰 3마리 중 한 마리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9일 울산 울주군 범서읍 한 농장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 /울산소방본부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22개 농가에서 곰 319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또 동물원 등 전국 28곳에서 전시·관람용으로 302마리를 관리하고 있다. A씨 농가 곰은 당국이 전시·관람용으로 분류해 매 분기 점검을 벌였다. 하지만 환경부 등은 무등록 시설에 있는 A씨 농가의 곰을 몰수하는 등의 강제 조치를 취하진 못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반달가슴곰이 멸종위기종이긴 하지만 엄연한 사유재산”이라며 “곰을 몰수해도 마땅히 보호할 시설도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당국은 오는 2026년 곰 사육 종식을 목표로 오는 2024년까지 보호 시설을 갖출 계획을 세운 상태다. 환경부는 A씨 농가처럼 무등록 시설에서 곰을 기르는 농가가 더 있는지 전수 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