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서울시가 최근 근무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공무원 한 명을 직위 해제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비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공무원을 서울시가 근무 평가 등급에 따라 직위 해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근무 평가를 통한 직위 해제는 그동안 사문화돼 있었는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신상필벌’을 강조하며 원칙대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하고 노조도 여기에 동의했다. 서울시 안팎에서는 “서울시와 공무원 노조가 합심해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사무실 악당)’을 솎아내고 조직 전체 전염을 막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공무원은 업무에서 배제돼 대기 발령 상태가 됐다. 앞으로 3개월간 내부 교육에서도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직권면직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직권면직은 민간 기업으로 치면 해고에 해당하는 조치다.

서울시는 2019년 “공무원 사회에 긴장감을 준다”는 취지로 ‘가평정’이라는 근무 성적 평가 제도를 도입했다. 1년에 두 번 5급 이하 공무원 1만여 명의 근무 성적을 수, 우, 양, 가 4단계로 평가한다. 최하위 등급인 가를 받으면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되고 성과급을 받을 수 없다. 급여와 승진에 영향을 미치는 호봉 승급도 6개월간 제한된다. 지방공무원법에 따르면 직위 해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직위 해제는 물론 가 등급을 받은 공무원도 없었다. 노조가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공직 사회 특유의 온정주의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조도 ‘오피스 빌런’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직원들 여론에 동의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의 한 7급 공무원은 “그동안 일부 ‘오피스 빌런’ 때문에 일하기 싫어지고 조직도 와해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인사 철마다 ‘오피스 빌런’을 받지 않으려고 부서마다 눈치작전을 하는데 ‘폭탄 돌리기’가 따로 없다”고 했다. 20대 공무원 김모씨는 “누구는 열심히 일하는데 누구는 온종일 일을 미루며 시간을 보낸다”며 “매일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보는 것도 고통”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가평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사에 들어갔고 지난달 공무원 4명에게 처음으로 가 등급을 줬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서울시 안에서는 이미 ‘오피스 빌런’으로 알려진 직원들”이라고 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공무원 A씨는 업무 성과가 특히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코로나 재택근무가 끝났는데도 출근을 거부한 데다 노조를 설립해 노조 가입을 거부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폭언을 했다”고 전했다. A씨는 가 등급자를 대상으로 한 맞춤 교육에도 불참해 결국 직위 해제 조치됐다. 그는 사내 게시판 등에 “서울시가 노조 탄압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수시로 서울시나 동료 직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거나 감사를 청구해 ‘감사왕’ 소리를 들었다.

C씨는 동료 공무원들과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사무실 자기 자리에서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D씨는 자기 뜻대로 업무가 진행되지 않으면 지나치게 신경질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D씨와 관련해서는 “자기주장이 너무 강했고, ‘괴롭힘을 당한다’고 느낀 동료 직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A씨를 제외한 3명은 맞춤 교육 과정에서 변화하려는 노력을 보여 직위 해제하는 대신 다른 부서로 전보 조치했다”며 “3명 모두 새 부서에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가평정 제도를 적극 운영해 공무원 조직의 활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철밥통’이라고 하는 공무원 조직에 경종을 울리는 조치”라며 “다른 지자체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

오피스 빌런은 사무실과 악당의 합성어로 직장 안에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