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내 창녕위궁재사 마당에서 열린 야외 결혼식. 신랑 배은규씨가 무릎을 꿇고 신부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있다. 서울시는 북서울꿈의숲을 비롯해 시내 공원과 한옥 등 24곳을 ‘나만의 결혼식장’으로 개방했다. /이태경 기자

지난 9월 10일 오후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예식장은 공원 안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인 창녕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 마당. 고즈넉한 한옥과 예쁜 돌담, 울창한 대나무숲이 어우러졌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초록색 잔디를 카펫 삼아 입장하자 하객 150여 명과 공원에 온 시민들이 다 함께 박수를 쳤다.

조선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 부부가 살던 전통 한옥인 이곳에선 매주 웨딩마치가 울린다.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나만의 결혼식장’으로 개방하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서울 시내 공원과 한옥 등 24곳을 결혼식장으로 개방했다. 북서울꿈의숲뿐만 아니라 강동구 광나루 한강공원 장미원, 성북구 예향재,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숲속의무대, 구로구 푸른수목원 푸른언덕,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 서초구 서울시인재개발원,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 물빛무대 등이다.

북서울꿈의숲에선 대관료 5만7000원만 내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하루 한두 커플만 받기 때문에 일반 예식장과 달리 여유 있는 결혼식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이날 예식도 1시간 30분 동안 마치 야외 공연처럼 진행됐다. 신부 친구들의 축가, 신랑 후배들의 댄스, 신부의 트로트 축가가 이어졌다.

신랑 배은규(36)씨는 “웨딩박람회 3번 가보니 기성복 같은 결혼식보다 맞춤 정장 같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부는 “우리만의 결혼식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며 “40분 안에 끝내야 하는 ‘공장식 예식’보다 여유로워서 참 좋다”고 했다.

배씨 커플이 결혼식에 쓴 돈은 꽃 장식과 드레스, 의자 대여, 사진 촬영 등 모두 합쳐 2600만원 정도. 결혼식 후 근처 레스토랑을 빌려 ‘2부 파티’도 열었다. 하객들은 “공원에 이렇게 예쁜 결혼식장이 있는 줄 몰랐다” “결혼식 온 김에 공원도 구경했다”며 저마다 감탄했다.

◇”한 달 동안 문의 전화만 1000통”

배씨 커플처럼 ‘나만의 결혼식장’을 찾는 커플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관계자는 “최근 한 달 새 문의 전화가 1000통이 넘게 왔다”고 했다.

요즘 예식장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코로나로 미뤄졌던 결혼식은 몰리는데 예식장 수는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말 948곳이었던 전국 예식장 수는 올 6월 742곳으로 22% 줄었다. 그러다 보니 주말 오전 등 인기 시간대는 이미 1년 치 예약이 마감됐다. 웃돈을 줘야 하는 곳도 있다.

서울시 ‘나만의 결혼식장’의 인기 요인은 저렴한 비용이다. 9월 16일 북서울꿈의숲에서 결혼식을 올린 김지은(33)씨는 “친동생이 작년에 4000만원 주고 결혼한 호텔 예식장이 올 초에는 1억원을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야외 한옥 결혼식도 대관료만 최소 4000만원이라서 포기했다”고 했다. 김씨는 대관료 5만7000원을 포함해 약 2000만원을 썼다. 그는 “아낀 돈으로 11박12일 스위스 신혼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미술관·랜드마크 결혼식도 추진

‘나만의 결혼식장’은 특별한 결혼식을 꿈꾸는 MZ세대의 욕구와 맞아떨어졌다.

9월 16일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자작마루 앞마당에서 결혼한 이금희(34)씨는 미국 대학에서 10년 유학했다. 그는 “미국 친구들이 와인 농장이나 옛 공장, 첫 데이트를 한 레스토랑 등에서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나만의 스토리를 담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고른 결혼식장이 뉴욕 브루클린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붉은 벽돌의 자작마루였다. 이씨는 “인터넷 블로그 후기가 넘치는 흔한 예식장이 아니라서 더 특별했다”고 했다. 독서 관련 팟캐스트도 운영 중인 이씨 커플은 하객들에게 그동안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선물했다.

대관료는 저렴하지만, 번거로운 점도 있다. 서울시가 연계해주는 결혼 전문 업체와 계약하거나, 직접 발품을 팔아 꽃 장식, 출장 뷔페 등을 맞춰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의자 등 필요한 물품을 빌려주는 등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며 “지금보다 더 많은 명소를 결혼식장으로 계속 발굴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미술관 결혼식’ ‘랜드마크 결혼식’ 등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