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치매가족 지원센터’에서 치매 환자 보호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곳에서는 치매 환자 가족들에게 상담과 교육 등을 제공한다. 다른 치매 환자 보호자들과 만나 어려운 점에 대해 대화를 할 수도 있다. /강동구

“여기 오니까 말 상대가 있어서 속이 시원하네.”

지난 22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치매가족 지원센터’에서 만난 이봉수(75)씨는 이렇게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씨는 치매에 걸린 95세 어머니를 집에서 혼자 모시고 산다. 어머니가 아들 이씨 외에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내쫓으려 해 아내와도 떨어져 살고 있다. 이씨는 “집에는 어머니밖에 안 계셔 얘기할 사람이 없다”며 “늘 어머니를 돌보기 바빴는데 여기 오니 비로소 나 자신도 ‘힐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가 찾은 치매가족 지원센터는 강동구가 지난 22일 문을 연 곳이다. 이곳에서는 치매 환자가 아니라 치매 환자 가족을 돌본다. 치매에 걸린 가족을 간병하느라 힘들었던 점을 상담할 수 있고 치매에 관한 의학 지식도 배운다. 또 같은 처지의 다른 치매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공예, 미술 등 취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최정수 강동구보건소장은 27일 “치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도 커지고 있어 치매가족 지원센터를 마련했다”며 “치매 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시설을 별도로 만든 건 강동구가 전국 최초”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0세 이상 치매 환자는 2020년 86만3542명, 2021년 91만726명, 2022년 95만351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1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계청은 2050년엔 치매 환자가 300만명을 넘길 것이라고 추정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1명을 돌보는 데 국가 지원을 제외한 개인 부담만 연 2061만원이 들어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도 크다.

질병관리청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1호 수칙으로 ‘보호자가 쉬어야 하는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치매는 낫기 어렵고 오래 가는 병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질병관리청은 특히 치매 환자 보호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른 가족과 교대하기’ ‘휴가 가기’ ‘치매 환자 주간 보호 센터 이용하기’ 등을 권하고 있다.

강동구 치매가족 지원센터에 모인 치매 환자 가족들은 서로를 ‘치매 동기’라 불렀다. 이경화(69)씨, 설용금(71)씨, 이순재(69)씨는 남편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어 더 빨리 친해졌다. 이순재씨가 “(남편이) 씻길 때만이라도 가만히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설용금씨가 “맞아, 맞아”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경화씨는 “이렇게 나와서 수다도 떨고 해야지 안 그러면 힘든 환자 간호를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이순재씨는 “다 같은 처지니까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며 “이렇게 만나면 그 순간이라도 힘들었던 걸 잊는다”고 했다. 설용금씨는 “같은 치매 환자도 사람마다 증상이 제각각 다르다”며 “아기 돌보는 거랑 비슷해 서로 어떻게 간병하는지 노하우를 공유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내가 치매에 걸린 후 30년 넘게 살았던 동네를 떠났다는 정기수(75)씨도 치매가족 지원센터에서 새 친구를 사귀었다. 정씨는 “처음 아내가 치매인 걸 알았을 때 동네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 이사를 왔다”며 “이사 와선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외로웠는데 여기 와서 새 친구를 사귄다”고 말했다. 그는 “딸도 ‘엄마는 내가 돌볼 테니 아빠는 친구 좀 만나라’며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미국에서는 치매 환자가 주간 보호 센터에 가 있는 동안 보호자에게 교육과 상담 등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도 치매 환자 보호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