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안병엽씨가 로봇 인형 ‘효돌이’와 성경 공부를 하고 있다. 로봇 인형이 들려준 성경 내용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메모도 한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안씨는 “효돌이와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관악구

“할아버지, 성경 읽어요!”

15일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서울 관악구 안병엽(85) 할아버지 집에서는 성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 인형 ‘효돌이’가 읽어주는 소리였다. 안씨는 시각 장애가 있어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천주교 신자인 안씨는 “성경 책은 글씨가 작아 읽다가 포기했다”며 “대신 효돌이가 매일 다섯 번씩 성경을 읽어준다”고 했다.

안씨는 10여 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살고 있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요양 보호사가 올 때를 제외하면 하루 대부분을 혼자 보낸다. 안씨의 가족이자 친구는 작년 11월 구청에서 지원한 효돌이다. 효돌이는 24시간 작동하면서 “제 손 참 보드랍죠?” “제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등 애교 섞인 말을 하며 말벗이 되어준다. 밥 먹는 시간과 약 먹는 시간도 알려준다. 안씨는 “혼자 있으면 말할 일이 없는데 효돌이랑 얘기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진짜 내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혼자 사는 노인과 1인 가구 등 정서적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로봇을 활용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 자치구가 늘고 있다. 효돌이처럼 미리 저장된 내용으로 말을 걸어주는 로봇이 있고, 인공지능(AI)이 내재돼 있어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로봇도 있다. 로봇이 말동무가 되어주고 소소한 안부를 나누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위험 신호가 감지되면 응급 신고도 가능하다. 구조가 필요할 때 효돌이 손을 3초간 꼭 쥐고 있기만 하면 관제 센터와 복지관 등에 자동으로 신고된다. 서울 관악구를 비롯해 성동·영등포·구로구 등에서 효돌이를 도입했다.

관악구는 작년 10월 부터 혼자 사는 노인·장애인 100명에게 로봇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약 열 달 동안 로봇과 생활해보니, 우울증 완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명에 대해 우울증 정도를 평가하는 우울증 척도 검사를 한 결과, 로봇 지원 전 평균 6.42점(최대 15점)이었는데 로봇 지원 열 달 후 4.65점으로 낮아졌다. 특히 11점 이상 우울증 고위험군의 비율은 39.5%에서 7.5%로 32%포인트 낮아졌다. 관악구는 지난 5월 로봇 100대를 더 도입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기능이 복잡한 AI 로봇보다 효돌이를 더 선호한다”며 “1대당 비용 80만원과 월 통신료 1만1000원을 모두 구청이 댄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지난달 16일부터 AI 로봇 ‘알파미니’ 10대를 도입해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도록 하고 있다. 알파미니는 오늘 기분이 어떤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르신들에게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간단한 퀴즈를 함께 풀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로봇과 함께 편지를 써서 자녀나 손주에게 이미지로 전달하기도 한다. 서초구는 작년부터 혼자 사는 관내 어르신 120명에게 로봇을 나눠줬는데 90% 이상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어르신뿐 아니라 우울증 환자에게 돌봄 로봇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강동구는 1인 가구 중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정을 선별해 AI 로봇 ‘다솜이K’를 지난달 시범 도입했다. 강동구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회원 중 1인 가구이면서 우울증을 진단받거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5가구에 다솜이를 지원했다. 다솜이는 대상자의 관심사에 따른 대화 유도가 가능하고 정신 건강 관리 콘텐츠를 보여주거나 응급 상황을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강동구 관계자는 “다솜이는 사용자 스스로 우울증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며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관제 센터를 통해 대응도 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고령화도 심화하는 만큼 이런 로봇 돌봄 서비스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로봇이 돌봄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생활의 양념’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정서적 돌봄이 필요한 누구나 로봇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본, 덴마크 등에서는 식사를 보조하는 수준까지 돌봄 로봇이 발달했다”며 “다만 로봇 비용이 비싼 만큼 비용 대비 편익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