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팽목항 팽목 성당에서 10년째 희생자를 위한 기도를 이어오는 손인성·김영례씨 부부./조홍복 기자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16일 오전 11시쯤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임시 주차장.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슨 ‘철제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왔다. 외벽에 노란 리본과 함께 ‘팽목 성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만들었다.

“피다 만 꽃봉오리인 채로 세상을 떠난 그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팽목 성당 지킴이 손인성(76)·김영례(68)씨 부부는 이날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식과 겹칠까 봐 평소보다 3시간 일찍 기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십자가 옆 화이트보드에 ‘세월호 참사, 4월 16일 3654일째’라 쓰고 촛불 5개에 불을 붙였다. 바닥에 앉아 세월호 미수습자와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의 안식을 바라는 기도를 20여 분 동안 이어갔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팽목항에는 천막 성당과 교회, 불교 시설 등이 차려졌다. 가톨릭 신자였던 손씨 부부도 이때 현장 미사에 참석했다. 손씨는 “내 손자 같은 아이들이 찬 바다에 잠겼다 팽목항 검안소에서 씻기고 단장을 한 채 가족 품에 안겼는데, 그걸 옆에서 본 뒤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부부는 “유가족의 마음을 치유하고 아픔을 나누고, 희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매일 성당을 지키기로 다짐했다”고 했다. 지금은 부부가 지키는 성당만 남았다.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의 상징적 공간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304명이 목숨을 잃은 진도 병풍도 인근 사고 해역에서 직선으로 30㎞, 가장 가까운 항구다. 40m 바다 밑에서 수습한 세월호 희생자들은 1시간 뱃길 팽목항에서 가장 먼저 가족을 만났다. 10년 전, 수백 명이 주저앉아 ‘통곡의 바다’를 향해 가족 이름을 부르며 크게 소리 내 운 곳이다. 팽목마을 주민들은 “팽목항은 부모의 통곡 소리로 가득했다”고 회상한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 팽목 성당에서 10년째 희생자를 위한 기도를 이어오는 손인성·김영례씨 부부./조홍복 기자

당시 팽목항에는 가족들을 위한 임시 거처와 검안소, 안치소, 약국, 식당 등이 들어섰다. 전국에서 슬픔을 나누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세월호 선체는 2017년 3월 23일 참사 1073일 만에 인양됐고, 1081일 만인 4월 9일 전남 목포 신항에 비스듬히 올려졌다. 이듬해 5월 10일 바로 세워졌다. 2018년 10월 수색이 종료됐고, 미수습자 5명의 장례가 그해 11월 치러졌다. 팽목항은 서서히 잊혔으나 10년이 흐른 지금도 팽목을 지키는 사람은 있었다.

손씨 부부는 세월호 희생자와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런데도 “참사를 기억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했다. 진도 고군면에서 전복 양식을 하는 부부는 매일 오전 11시쯤 출발해 1시간씩 차를 달려 팽목 성당을 찾는다. 마침 팽목항을 찾은 추모객이 있으면 그들과 담소를 나누고, 오후 2시가 되면 기도를 올린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부의 일과다.

2020년 6월, 부부는 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피곤해 잠깐 졸음 운전을 했다. 맞은편 차와 충돌해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부부는 등골뼈와 갈비뼈, 엉덩이뼈 등 6~7군데가 부러져 3개월간 입원했다. 손씨는 오히려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들이 팽목 성당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봐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성당 바로 옆 컨테이너 강당은 희생자 유족과 자원봉사자들이 지키고 있다. 월~수요일은 유족 2~3명이 돌아가며 먹고 자고, 목~일요일은 시민 단체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이 그 자리를 메운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시설인 ‘팽목 기억관’은 참사 10주기를 맞아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강원도에서 온 중년 남성은 이날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봄꽃 같았던 단원고 학생들에게. 10년 전 4월 16일 밤새 울었단다. 나의 딸, 아들과도 비슷한 나이의 너희였기에 가슴이 메어 아팠다. 10년이 흐른 지금 너희 영면을 다시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