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과 병원 직원만이 거주해 섬 전체가 의료기관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풍경. 코로나 사태로 2020년 2월부터 현재까지 3년 넘게 방문객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 /고흥군

지난 7일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초입 공용주차장. 주차장 앞은 물론이고 섬 진입 도로변에는 ‘코로나 확산 방지, 국립소록도병원 외부 방문객 출입 전면 통제’가 적힌 플래카드와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나들이 철인데도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마침 주차장으로 진입하려던 차량은 안내 요원이 출입을 통제하자 발길을 돌렸다. 경남 진주에서 온 박연자(52)씨는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해제돼 당연히 소록도 방문이 가능한 줄 알았다”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주차장 근처 고흥군 관광안내소 해설사 김모(59)씨는 “소록도가 개방된 걸로 알고 왔다가 헛걸음하는 사람이 요즘 제법 있다”며 “소록도 개방에 대한 문의 전화가 하루 20여 통 걸려온다”고 말했다. 김씨는 “소록도는 녹동항, 거금도, 연홍도로 이어지는 연계 관광 코스 중 필수 방문지”라며 “대표 관광지가 빠지는 바람에 아예 고흥 관광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흥의 대표 관광지 소록도가 지난 1월 말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이후에도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2월부터 시작한 방문객과 차량 출입 전면 통제가 3년 이상 이어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주민은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소록도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흥 반도의 서쪽에 있는 소록도는 ‘한센인(한센병 환자)의 섬’으로 불린다. 한센인과 의료진만이 거주하는 섬 자체가 의료기관이기 때문이다. 2008년 소록대교 개통 이후 차량으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고흥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섬의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데다 한센인의 아픈 역사가 깃든 박물관과 중앙공원 등에 방문객이 몰렸다. 한센인 거주 공간을 제외한 섬 일부 지역이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이다. 소록도는 고흥 8경 중 하나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고흥의 전체 관광객 459만명 중 57만명(12%)이 소록도를 찾았다.

소록도 개방 여부를 놓고 일부 주민과 병원 측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소록도에서 차로 5분 떨어진 녹동항 상가 주민들은 “소록도 관광객이 끊겨 생계를 위협받고 있으니 소록도를 부분 개방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국립소록도병원 측은 9일 “아직 의료기관은 실내 마스크 착용 등 방역 조치가 남아 있어 개방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소록도 부분 개방 요구는 지난달 6일 고흥 도양읍에서 열린 ‘군민과의 토론회’에서 불거졌다. 공영민 고흥군수를 만난 녹동항 상가 주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섬 야외는 개방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한센인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둘레길을 개방해 달라”고 요구했다.

상가 주민들이 개방을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업 매출이 급감한 탓이다. 3년 동안 소록도 입도가 금지되면서 관련 관광객이 60%쯤 떨어졌고, 매출도 40~50% 하락했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소록도 방문 관광객은 보통 녹동항을 방문해 횟집 등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특산물을 구입한 뒤 ‘소록도→거금도→연홍도’ 순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대표 관광지 소록도가 제외되자 전체 관광객이 급감해 그만큼 매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녹동항의 한 횟집 대표 문모(59)씨는 “10년을 장사하면서 요즘처럼 힘든 경우는 처음”이라며 “3~5월이 대목인데 사람이 전혀 없다”고 했다. 김건아 고흥군 기획팀장은 “고흥군은 주민과 입장이 같다”며 “병원 직원들이 사는 관사 지대 쪽 둘레길 개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립소록도병원 측은 “정부가 의료기관의 방역 조치를 해제하기 전까지는 일반인 출입을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센인 400여 명과 병원 직원 200여 명이 거주하는 소록도는 섬 전체가 의료기관이나 다름없다. 이들 외에 관공서 직원과 종교인, 직원 가족 등 신분이 확인된 70여 명만 출입이 허용된다. 섬의 땅 99%가 정부가 소유한 국유지다. 섬의 개방 여부는 병원 측이 보건복지부와 협의하고 복지부장관이 결정한다.

엄재웅 소록도병원 기획운영과 사무관은 “한센인은 평균 나이가 80세로 고령이고 전염병에 매우 취약하다. 한센인이 평소 이용하는 둘레길을 개방하면 일반인과 접촉하게 돼 위험할 수 있다”며 “향후 방역 조치가 해제돼 섬을 개방하더라도 ‘소록도중앙공원’과 ‘한센병박물관’으로 방문 지역을 제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