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세워진 인천 팔미도. 오는 1일 점등 120주년을 맞는 옛 등대(오른쪽 화살표)에 약 12시간 동안 불을 밝히고, 기념행사를 연다. 가운데 높은 등대는 옛 등대가 100주년을 맞은 2003년 새로 지은 것이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八尾島) 등대가 점등 120주년을 맞아 다시 불을 밝힌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은 팔미도 등대 점등 120주년이 되는 오는 1일, 오후 5시 30분쯤부터 다음 날 일출 전까지 불을 밝힐 예정이라고 30일 밝혔다. 1903년 6월 1일 첫 불을 밝힌 팔미도 등대는 100주년인 2003년 12월 퇴역했지만, 120돌을 맞아 기념 점등을 하기로 한 것이다. 또 팔미도 등대의 마지막 등대지기 허근(79)씨 등 관계자들을 초청해 다양한 기념행사도 연다.

팔미도 옛 등대를 끝으로 33년간의 등대지기 생활을 마무리했던 허씨는 “팔미도 등대의 마지막을 지켰다는 자부심은 여전히 갖고 있다”며 “10년 전 110주년 때 만나고, 10년 만에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니 벌써 설렌다”고 말했다. 그는 팔미도 옛 등대와 13년을 함께하다가 퇴역을 지켜봤다.

인천항 남서쪽 16㎞에 있는 면적 7만6000㎡의 무인도 팔미도에 높이 7.9m, 지름 2m 규모의 등대가 세워진 계기는 외세의 강압 때문이다. 일본이 조선과 체결한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을 내세워 등대 건설을 강권한 것. 인천 해수청 관계자는 “당시 대한제국에는 근대식 등대를 만들 만한 기술이나 물자가 없었다”며 “덕수궁 석조전을 설계한 영국인 하딩이 설계를, 시공은 일본 회사가 맡았고, 등명기(燈明機)는 프랑스 조명기계를 들여왔다”고 했다.

팔미도 등대는 1950년 6·25전쟁의 운명을 바꾼 인천상륙작전 성공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영흥도를 중심으로 각종 첩보 활동을 펼쳤던 켈로부대원들은 “9월 14일 밤 12시 정각에 등대를 밝히라”는 유엔군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팔미도에 잠입해 등대에 불을 밝혔고, 이 불빛을 길잡이 삼아 함정 수백 척이 극심한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무사히 월미도 해안에 상륙할 수 있었다.

팔미도 등대는 점등 100년 만인 2003년 12월 바로 옆에 세워진 신축 등대에 임무를 넘기고 현재는 사적(史跡)으로 남아 있다. 2002년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됐고, 2020년 9월 15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7호로 승격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팔미도 등대는 현존하는 등대 중 가장 오래된 등대로서 대한제국부터 근대기 전체의 역사를 관통하는 역사성과 상징성, 대표성, 지역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