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한국산업표준) 규격에 미달한 레미콘을 납품하고 뒷돈을 챙기는 등 불법을 저지른 건설회사 직원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또한 불법 프로그램을 개발해 레미콘 배합 비율을 조작하고, 규격 미달의 레미콘 약 900억원어치를 수도권 건설 현장 400여곳에 납품한 업체 직원도 함께 검거됐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KS규격 미달의 레미콘을 납품하면서 건설사에는 약정한 대로 레미콘을 배합한 것처럼 속이고 허위 납품서류를 제출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사기)로 A 레미콘 업체 임직원 16명을 검거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이 중 임원 B(61)씨 등 2명을 구속했다.

또한 이들의 요청을 받고 레미콘 배합 비율을 조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혐의(사기 방조)로 업체 직원 C(42)씨 등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KS규격 미달의 레미콘을 수년간 뒷돈을 챙기며 납품받은 국내 건설사 9곳의 품질관리 담당 직원 D(46)씨 등 9명은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 레미콘 업체뿐만 아니라 D씨 등에게 뒷돈을 준 다른 레미콘 업체 13곳의 직원 15명도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레미콘 출하 대기중인 믹서 트럭들/경기북부경찰청

A 업체 임원 B씨 등은 2017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시멘트와 자갈의 함량을 줄여 만든 KS규격 미달의 레미콘 124만㎡(레미콘 20만대·900억원 상당)를 수도권 건설 현장 422곳에 납품한 혐의를 받고 있다. KS규격보다 자갈은 4∼22%, 시멘트는 2∼9%의 비율을 낮춰 레미콘을 배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배합비율을 조작한 KS규격 미달의 레미콘이 약 3년간 아파트, 오피스텔, 공장, 각종 관급공사 등 수도권 건설 현장 곳곳에 납품됐다. 특히 최근 지어진 수도권의 신도시 아파트에도 상당한 양이 납품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 결과 D씨 등 건설사의 품질관리 담당자들은 이들 레미콘 업체로부터 품질 하자를 묵인한 대가로 월 30만∼50만원의 돈을 ‘관리비’ 명목으로 받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 품질관리 담당자당 많게는 2000여만원을 챙겼으며, 9명이 총 수수한 금액은 5000여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돈을 받고 나서 실제 건설현장에서 1차 시험(슬럼프·공기량·염화물 함유량)을 할 때 납품업체 담당자들이 대행하도록 했다. A 업체의 경우에는 건설현장에 보관 중인 레미콘의 2차 시험(압축강도)을 할 때 따로 준비해둔 KS규격에 맞는 레미콘으로 바꾼 사실도 밝혀졌다. 이번에 적발된 건설사 9곳에는 국내 20위권의 대형건설사도 포함됐으며, 대부분 국내 100위권에 드는 건설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미콘 생산공정 방범카메라/경기북부경찰청

임경호 경기북부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산업통상자원부(국가기술표준원)와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과 협업해 제도개선사항을 통보하고, A 레미콘업체에서 납품한 배합 비율로 시료를 제작해 제대로 된 압축강도 시험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