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경북 김천시 김천실내체육관. ‘2024 전국 실업농구 연맹전’ 마지막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47대 46의 1점 차 치열한 승부. 한국 여자 농구의 전설로 불리는 박찬숙(65)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 감독이 눈물을 흘렸다. 선수들은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쥔 채 환호했다.

박찬숙(뒷줄 맨 왼쪽)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 감독과 선수들이 지난 14일 오후 경북 김천시 김천실내체육관에서 '2024 전국 실업농구 연맹전'에서 우승을 거머쥔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작년 3월 창단한 이 팀 선수들은 프로 방출, 미지명 등 각자의 아픔을 딛고 1년 만에 첫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서대문구

작년 3월 창단한 실업팀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은 한 번쯤 실패를 맛본 선수들로 꾸려졌다. 프로에서 방출된 선수부터 프로팀에 지명되지 못한 선수, 조기 은퇴한 선수 등이 농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었다. 창단한 지 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팀의 가드 이주하(22) 선수는 프로 생활 2년 만인 지난해 팀에서 방출됐다. 어머니는 “아직 나이도 어리니까 앞으로 기회가 많을 거다”라고 위로했지만 이 선수는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농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박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지 마라. 나랑 같이 농구 더 해보자”는 박 감독 말에 곧바로 서대문구청 농구단 합류를 결정했다.

센터 김해지(27) 선수는 지난 2020년 프로팀에 지명됐으나, 적응을 못 해 그해 스스로 팀을 나왔다. 김 선수는 “팀을 나오고 방황했지만 농구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며 “2년간 새로운 기회를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개인 훈련을 하며 농구공을 놓지 않았다. 서대문구청 농구단에 들어간 뒤로는 본인의 약점이었던 ‘골밑슛’ ‘리바운드’를 끝없이 연습했다. 이번 대회 전 경기에 출전해 우승에 큰 역할을 했다.

팀을 창단할 때만 해도 제각각 사연을 가진 선수들은 훈련을 잘 따라오지 못했다. 은퇴 후 공백기도 있었고,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는 것이다.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린 박 감독. 혹독한 체력 훈련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렸다. 농구코트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전력 질주를 하고 잠시 쉬고 또 뛰길 반복하는 ‘서킷 트레이닝’은 박 감독의 악명 높은 훈련 중 하나다. 매주 산악 달리기도 했다.

악바리 임현지(22) 선수는 박 감독의 고강도 훈련을 이겨내기 위해 휴식 시간에도 훈련을 자청했다. 임 선수는 초등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 선수 생활을 해왔지만 성적이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2023년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팀에 지명도 못 받았다. 그는 “실업팀에 가서 노력하면 언젠가 프로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꿈이 있다”고 했다. 전남 나주·영광, 전북 전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임 선수는 처음하는 서울 생활에 신이 난 모습이었다.

박 감독은 선수 시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우승을 했지만, 지도자로서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최고 지도자상(賞)’도 받았다. 박 감독은 “그렇게 많은 우승을 했는데 이번처럼 기쁜 적이 없다”며 “이번 우승은 꿈을 놓지 않고 달려준 선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의 화려한 경력이 초기에는 걸림돌이 됐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너무 크고 어려운 선배이자,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알게 된 박 감독은 훈련 시간을 제외하고는 따뜻한 엄마의 모습이 되려고 노력했다. 말도 잘 못 걸던 선수들이 이제는 고민이 있으면 박 감독부터 찾을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주하 선수는 “감독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한 명 한 명 포기하지 않고 함께 성장시키려는 감독님의 진짜 마음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는 23일 신촌 등 서대문구 일대에서 카퍼레이드를 연다. 박 감독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카퍼레이드 해보고 40년 만에 다시 하게 됐다”며 웃었다.

서대문구 농구단의 다음 목표는 또 우승이다. 6월 강원 태백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를 노리고 있다. 주장 윤나리(35) 선수는 “매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뛰고 훈련하고 있다”며 “다음 대회도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