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왕의 장녀인 파 공주가 2020년 11월 방콕 왕궁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유력 왕위 후계자로 꼽히던 공주는 지난 14일 반려견과 함께 달리다 쓰러진 뒤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수년간 검사로 활동하며 ‘검사 프린세스’로 불렸던 태국 왕실 장녀가 중태에 빠지자 태국 국민이 전국 각지에서 한마음으로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약자를 위해 나서는 등 모범적인 왕족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아온 공주는 국민 염원에도 일주일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1일 방콕포스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팟차라끼띠야파 나렌티라텝파야와디(44) 태국 공주(파 공주)는 지난 14일 북동부 나콘라차시마주(州)에서 태국 육군의 군견 대회 참가를 위해 반려견과 훈련하던 중 쓰러졌다. 파 공주는 마하 와찌랄롱꼰(라마 10세) 국왕의 첫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차기 국왕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당시 달리기 중이던 파 공주는 당시 가슴 통증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 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다음 날 방콕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다. 태국 왕실은 지난 19일 정확한 병명이나 상태를 세부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심장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파 공주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호흡도 기계 장치와 약물에 의존하고 있어 아직 회복을 낙관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파 공주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지자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공주 ‘사망설’이 퍼지는 등 태국 국민은 큰 혼란에 빠졌다. 고비를 넘겼다는 왕실 발표에 가슴을 쓸어내린 뒤에는 전국 곳곳에서 공주 쾌유 응원 기도를 시작했다. 학교와 유치원을 비롯해 공공 장소에 설치된 공주 초상화 앞에 찾아와 기도하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종교계도 일제히 나섰다. 태국의 국교인 불교 외에 태국 이슬람사무소, 가톨릭 주교회의도 공주의 쾌유를 기원하는 기도회를 매일 열고 있다.

국민의 이러한 지지는 그가 보인 남다른 행보 때문이다. 많은 왕족이 직업 없이 호화 생활을 누리는 것과 달리 파 공주는 검사로 일하며 국민 가까이에서 소탈하게 살았다. 파 공주는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6년 방콕 대검찰청 소속 검사로 임용됐고, 이후 지방 검찰 등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다. 2012년 주오스트리아 태국 대사와 2017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친선 대사 등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2월부터는 왕립 근위 사령부에서 장군으로 복무하며 군인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께 설립한 ‘프린세스 파 재단’을 통해 농촌 지역 빈곤층과 이재민 돕기, 여성 재소자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런 모습은 코로나 사태 이후 해외를 여러 차례 방문해 국민을 버리고 도피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현 국왕 등과 대비됐다. 온라인상에 ‘왜 우리가 왕이 필요한가’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는 캠페인이 벌어지는 등 왕실에 대한 반발 여론이 일기도 했지만, 파 공주만큼은 젊은 층에서도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차기 왕위 후계자 중 선두에 서있다는 평가도 받았으나 이제는 공주의 건강 문제가 변수가 되게 됐다. 태국은 국정 운영은 선출직 총리가 맡지만 여전히 국왕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난 1974년 개헌을 통해 공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 와치랄롱꼰 국왕과 셋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디파콘(17) 왕자가 있지만 왕실은 아직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