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이중섭미술상 시상식에 참석한 역대 수상자들. 화가 오원배·곽훈·윤석남·정종미, 올해 수상자 정정엽, 화가 황용엽·강경구·정복수(왼쪽부터). /박상훈 기자

살림은 근로와 같다. ‘살림의 화가’ 정정엽(60)씨는 “이제 큰일났다”고 말했다. “이런 큰 상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게으르지 못할 테니까.”

24일 서울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제34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 겸 수상기념전이 열렸다. 올해 수상자 정씨는 1980년대부터 여성과 노동, 소외된 일상을 회화로 옮겨왔다. 특히 곡식과 나물 등 밥상의 자연에 ‘살림의 시선’을 던짐으로써 뜻밖의 생명력을 조명해 호평받았다. 정씨는 “상을 받으며 새삼스레 이중섭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그분은 예술을 향한 어떤 질문을 품고서 그런 멋진 그림을 그렸을까. 저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후 자연과 문명, 여성과 남성, 예술과 사회의 간극을 어떻게 균형 잡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때로 힘겹기도 했다. 부족한 제게 이 상을 주시니 그 고민을 계속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다.”

이번 수상기념전에 출품된 그림 37점에서 그 고민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시장에서 위풍당당 걸어나오는 주부들, 오색(五色)으로 쏟아지는 콩, 방치된 감자에서 돋아난 푸른 싹 등이 작가가 천착해온 노동과 여성운동의 의미를 아우른다. 이날 축사를 맡은 김홍희 전(前)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정정엽은 1995년 첫 개인전 ‘생명을 아우르는 살림’을 열 당시부터 이미 싹이 파랬다”며 “곡식이 농사를 통해 밥상에 오를 때까지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지금 새로운 미학적 결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전만 20회를 가뿐히 넘길 정도로 부지런히 화업을 잇고 있다. “전시를 많이 연 것으로 상을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성실한 화가”를 향해 지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올해 새로 개관한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열린 첫 ‘이중섭미술상’ 시상식이었다. 김 전 관장은 “복 많은 작가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보니 이 좋은 공간에서 처음 수상 기념전을 여는 작가이기도 하다”며 “코로나 이후 미술계 행사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말 많은 분이 축하하러 오셨다”고 말했다. 정씨는 “따로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와준 선·후배 및 친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강경구 등 이중섭미술상 운영위원, 곽천남·임근혜 등 심사위원, 역대 이중섭미술상 수상 작가 황용엽·윤석남·정종미·정복수·곽훈씨, 김종규 박물관협회 명예회장,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신양섭 화가,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홍준호 발행인, 김문순 미디어연구소 이사장 등 각계 인사 70여 명이 참석했다. 수상 기념전은 다음 달 6일까지 열린다. (02)724-6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