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17년 미국의 공영방송 PBS에 출연했을 때의 모습. 번스 국장은 지난달 “CIA가 하는 일을 어느 정도는 알기 쉽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PBS 유튜브

“우리는 보통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림자처럼 활동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설명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어느 정도는 알기 쉽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윌리엄 번스(66)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달 공개된 CIA 팟캐스트 ‘랭글리 파일’ 첫 회에 출연해 밝힌 소감이다. ‘랭글리’는 CIA 본부가 있는 미 버지니아주 도시 이름이다. 1947년 창설 뒤 미국과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꿔놓은 사건들에 비밀리에 관여해온 CIA가 처음으로 팟캐스트를 만들어 화제다. 이번 첫 회를 시작으로 15~30분 분량의 방송 에피소드가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번스 국장과 같이 대중들의 이목을 잡아 끌 특별 손님들이 출연할 예정이다. CIA는 현재 예고편 한 편과 두 편의 에피소드를 올려놓았다.

음지를 지향하는 정보기관이 불특정 다수를 위한 팟캐스트를 만든 것에 대해 CIA는 “우리의 일을 대중에게 알리고, 기관의 핵심 임무와 그 과정에서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첫 회에 등장한 번스 국장은 “우리의 임무는 정책 입안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어야 하는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며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CIA의 작업은 스파이 영화에서처럼 빠른 차를 운전하고 폭탄을 제거하며 세계 위기를 매일 스스로 해결하는 영웅적인 세계와는 다르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번 팟캐스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종 음모를 꾸미는 집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CIA의 변화를 향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팟캐스트 첫 회 제목부터가 “번스 CIA 국장이 CIA를 어둠 속에서 끌어내다”로, 자학 개그적 성격이 깃들어있다. 앞서 CIA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사상 첫 여성 수장인 지나 해스펠이 국장을 지낸 데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외부 인사인 윌리엄 번스 국장이 취임하는 등 실제로 변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제8대 CIA 국장으로 취임한 번스는 ‘음지’보다는 ‘양지’에서 주로 활동해온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1998~2001년 주요르단 미국 대사를, 2005~2008년 주러 미국 대사를 맡았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국무부 차관을 지내며 2012년 한미 차관급 전략 대화에 참관하러 한국에 방문한 적도 있는 인물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 활동을 해온 외교관 출신을 CIA 국장으로 앉힌 것 자체가 그만큼 외교와 정보의 영역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왔다.

앞서 CIA와 함께 미 권력기관의 양강 구도를 이루는 FBI는 이미 2년 전부터 ‘인사이드 FBI’라는 팟캐스트 채널을 개설해 에피소드 33편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마이클 모렐 CIA 전 부국장 또한 개인 팟캐스트 채널(Intelligence Matters)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CIA는 랭글리 본부에 있는 박물관을 리모델링해 지난달 24일(현지 시각)부터 직원과 기자 등 일부 방문객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했다. 박물관에는 미국이 드론으로 타격, 살해한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아프가니스탄 은신처 주택의 모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