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독재에 반대를 외쳤던 할아버지의 사명감을 생각하면서 힘든 수험 생활을 버텼습니다”

북한에서 반(反)체제 인사로 찍혀 탄압받던 법조인의 손자가 우리나라 법조인이 됐다. 탈북해 우리나라에 온 지 올해로 24년이 된 임철(34)씨다. 임씨는 20일 법무부가 발표한 제1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임씨의 할아버지는 1960년대 법조계 고위직에 있다가, 김일성 체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함경북도 아오지로 추방됐다. 임씨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박해를 받던 임씨의 가족은 1997~1998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넘어왔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거친 임씨는 2006년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고, 2014년엔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임씨는 5수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임씨는 “어린 시절 받았던 북한에서의 체제 교육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며 “한국에서 공부도 많이 했고 한국 사회나 문화를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보니 법치주의를 기초로 한 우리 사회의 법 체계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 무척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임씨는 네 차례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다 마지막 기회인 올해 합격했다.

힘든 수험 생활에서 가장 큰 버팀목이 됐던 건 가족들이었다. 계속된 시험 탈락으로 힘들어할 때 임씨의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며 임씨를 격려했다고 한다. 임씨는 “할아버지는 예전에 그 냉혹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일성 독재에 대해 늘 개탄하셨다고 한다”라며 “할머니가 ‘너도 그런 피가 흐르기 때문에, 꼭 법조인으로서 북한과 탈북자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고 했다. 임씨의 여동생은 결혼 날짜까지 미루면서 임씨를 지원했다. 임씨는 “법조인·기업가 멘토들과 시민단체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도 물심양면으로 큰 지원을 해줘서 힘이 됐다”고 했다.

임씨는 “앞으로 북한 인권과 탈북자 사회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집권과 코로나 유행이 겹쳐 많은 탈북자가 중국·러시아 등 제3국에서 억류된 채 구제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한국에서 이를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