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존 리비는 “고급 스테이크를 접대하거나 파티용 선물을 준다고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는 건 아니다”라며 “봉사 활동같이 긍정적 사회 경험을 쌓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제가 10여 년 전 ‘인플루언서’(influencers·영향력 있는 사람)를 연구 용어로 사용할 때만 해도 노벨상이나 올림픽 메달리스트, 종군기자 등 사회를 변화시키는 인물을 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토스트를 예쁘게 찍어 개인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이들을 가리키는 정도로 아무 때나 쓰는 말이 됐달까요? 저는 BTS(방탄소년단)처럼 선한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인플루언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뉴욕대 출신 행동과학자인 존 리비(Levy·41)는 뉴욕 사교계에서 ‘인맥왕’으로 통한다. 2009년 뉴욕에서 ‘인플루언서 만찬(influencers dinner)’을 창시해 뉴욕타임스 등으로부터 “네트워킹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로 주목받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당신을 초대합니다(You’re invited)’로 국내 독자와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 그는 첫마디로 “BTS 나라에 왔다”며 열성 팬임을 밝혔다.

그가 만든 인플루언서 만찬은 한마디로 ‘비밀 사교 모임’이다. 리비의 집에 각자 초대된 12명은 서로의 이름은 물론이고 직책과 하는 일도 전혀 모른 채 저녁식사부터 함께 만들며 대화를 나눈다. 음식 재료를 다듬고, 취미를 공개하며 서로를 파악해 간다. 자기 소개는 그날 모임이 끝난 뒤에야 이루어진다.

생각만 해도 낯설고 어색할 것만 같은 자리인데, 미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임원들부터 노벨상 수상자, 영화감독, 소설가, 음악가 등 각계 리더 1200여 명이 앞다퉈 찾아와 인맥을 쌓았다. 뉴욕타임스와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유명 매체들도 인기 비결을 파헤치기 위해 ‘잠입’ 취재를 했다. 거기엔 두 가지 비밀이 있었다. 첫째는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 리비는 이를 “이케아 효과”라 했다. 음식이 엉망이 되든 잘되든, 이케아 가구를 조립할 때처럼 직접 손을 대면 더 애정이 간다는 것이다. 둘째는 ‘대화를 통해 쌓이는 신뢰’다.

“저명한 노벨상 수상자가 자신의 옆에 앉은 사람이 알고 보니 자신이 어릴 때 좋아한 영화를 만든 감독인 걸 뒤늦게 알고는 영광이라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위대한 사람들도 미처 채우지 못한 결핍을 서로가 충족해주는 과정이었죠. 모든 인간은 외롭고, 저녁을 먹은 뒤엔 다들 ‘치유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짧은 시간이지만 이들이 쌓은 우정을 통해 환경이나 기부 프로젝트처럼 사회적으로 파급 효과가 큰 의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인맥왕’인 그가 정작 우리에게는 “그물코 같은 인간관계를 애써 맺으려고 노력하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저 사람이 내게 뭔가를 바라서 친한 척하는 것 같은데?’라는 의구심이 든 적 있지 않나요? 소속감 등을 가지려고 억지로 네트워킹을 하다 보면 더러운(dirty) 기분이 든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더군요. 마치 대가를 주고받아야 할 것만 같거든요.”

돈을 써가며 비싼 밥 한 끼를 대접하는 것보다, 상대의 취향을 고려하면서도 미래 세대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치며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어르신 돕기 같은 것을 나누는 게 더 좋다는 설명이다. “중요한 건 ‘꾸준함’입니다. 저도 12년을 해왔잖아요. BTS 팬인 아미들이 일개 팬클럽에서 친구를 불러들이는 커뮤니티로, 또 기부에 앞장서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구심점으로 진화한 것처럼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세상이 변합니다. 어쩌면 BTS를 인플루언서라는 단어의 대체어로 쓸 날이 올지도 몰라요. 그렇담 저도 언젠간 만찬에 BTS를 초청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