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고려인 1만5000여 명이 묻혀있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지역에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항일 독립 유공자들을 기리는 공원과 추모의 벽 건립을 추진한다. 우슈토베는 1937년 10월 러시아 극동 지방에 살던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당해 최초로 정착한 곳이다.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1일 본지 인터뷰에서 “최근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으로 고려인 독립 영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내년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3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는 공원과 이들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同族如天' 새겨진 고려인 추모비 - 지난 26일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세워진 고려인 추모비(왼쪽 사진). '동포를 하늘같이 섬기라'는 뜻의 동족여천(同族如天)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조선일보 홍준호 발행인,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 김부섭 남양주 현대병원 원장이 이날 열린 고려인 추모공원 기공식에서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로부터 감사장과 감사패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김로만 우헤노비치 카자흐스탄 하원의원, 김 원장, 라 이사장, 홍 발행인.

보훈처가 공식 인정한 고려인 항일 독립 유공자는 홍범도·이동휘·계봉우·황경섭·최재형·최성학·민긍호·김경천·오성묵·김미하일·황운정 등 11명이다.

추모비에는 이 11명과 현지 고려인협회에서 추천한 인사들 이름이 오르게 된다.

라 이사장이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의 부친 백봉 라용균(羅容均·1896~1984) 선생과 홍범도 장군의 인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 후 제헌 의원, 국회 부의장을 지낸 라용균 선생은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원동노력자대회에 김규식, 여운형 선생과 함께 대표로 참석했다. 당시 이 행사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과 만났다고 한다.

국가기록원/서울신문/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원동노력자대회에 김규식, 여운형 선생과 함께 대표로 참석한 라용균 선생(왼쪽 붉은 표시). 당시 이 행사에 홍범도 장군(오른쪽 붉은 점)이 참석한 모습.

라 이사장은 이런 인연을 따라 2013년 홍범도 장군이 경비 일을 하면서 말년을 보낸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을 방문했고, 이후 현지 고려인 청년들을 장학생으로 선정해 한국 유학을 지원했다. 2017년부터는 국내에서 탈북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통일나눔아카데미 중앙아시아 지부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설립해 고려인에게 한글 교육 지원을 시작했다. 그는 “한글을 전혀 모르는 고려인이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고려인 정착에 도움을 준 카자흐스탄 국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현대병원(원장 김부섭)과 함께 2018년부터 현지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현지 병원에 의약품과 수술 장비를 기증하기도 했다.

통일나눔아카데미는 2019년에 우슈토베 지역에 일반 고려인들을 추모하는 공원도 조성했다. 강제 이주 당시 고려인들은 척박하고 낯선 땅에서 토굴을 파거나 움집을 짓고 삶을 이어갔지만 열악한 환경에 약 1만5000명이 숨졌다고 한다. 추모공원에는 카자흐스탄 토카예프 대통령이 친필로 쓴 추모 글도 있다.

라 이사장은 “망국(亡國)의 한이 서린 땅에 항일 독립 영웅을 비롯해 고려인을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 우리 국민과 고려인, 탈북 청소년, 다문화 청소년에게 올바른 역사·가치·문화관을 교육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