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돌아온 문인석과 장군석에 아무래도 마음이 많이 가지요. 앞으로도 일본으로 유출된 석조 유물, 국내에 퍼져 있는 옛돌을 꾸준히 모아 전시하려고 합니다.”

/김연정 객원기자

17일 오전 서울 성북동 맨 꼭대기에 자리 잡은 우리옛돌박물관에 들어서자 문인석, 장군, 석탑, 석불, 석수(石獸), 벅수(돌로 만든 장승) 등 각종 ‘돌덩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천신일(78)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이 40년 넘게 국내외에서 모아온 귀한 석조 유물들이다. 2000년 경기도 용인에 세중옛돌박물관을 열었다가, 2015년 11월 집을 지으려고 오래전 사뒀던 성북동 5500평짜리 땅에 새 박물관을 지어 문화재단에 무상으로 기부했다. 이곳에 전시된 1200점 넘는 옛돌을 보려고 주말이면 엄마 아빠들이 아이 손을 잡고 이곳을 찾는다.

“일본 사람들이 소중한 우리 옛돌을 가져가는 게 화가 나서 시작한 일인데, 박물관까지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천 이사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1978년 인사동의 한 골동품상에서 일본인이 사가려던 석조유물 27점을 몽땅 사버린 게 시작이었다. 그때 돈으로 1억5000만원어치였다. 이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석조 유물들을 모았다.

여행전문업체 세중의 회장인 그가 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데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1997년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이화여대 박물관의 석조 유물 전시회를 무작정 보러 갔어요. 그러고선 당시 이화여대 박물관장이던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내 집에 있는 돌들도 보여주게 됐죠. 그랬더니 김 관장이 ‘이렇게 좋은 것들을 혼자서 보는 건 범죄’라면서 박물관을 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급속도로 진행이 됐어요.”

천 이사장은 친분이 깊었던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조언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 회장께서 일본에 있는 유물을 환수하는 것에 대해 ‘꼭 해야 하는 일이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꼭 하라’고 하셨어요.” 실제 천 이사장은 2001년 일본에서 문인석 등 70점을 되찾아왔고, 2019년엔 일본 오자와 데리유키씨 부부로부터 조선시대 장군석 등 8점을 기증받았다. 명지대는 오는 23일 우리나라 미술사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공로로 천 이사장에게 명예 미술사학 박사를 수여한다. 석조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를 지키고 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결과다.

천 이사장은 이전에도 사재를 털어 사회에 환원했었다. 1985년 설립 중이던 포항공대에 6만3000여평의 땅을 내놨고, 고려대·연세대 등 대학에도 수십억원을 기부했다. 오랫동안 모아온 소중한 석조 유물들을 소개하던 그가 말했다. “돌이 무거워서 마음대로 자리를 옮길 수 없어요. 유물을 들이고 내보내는 것 하나하나 다 돈이 들어요. 하지만 지금도 귀한 유물을 수집해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어요. 역사가 담긴 옛돌의 가치가 널리 알려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