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속 검사(檢事)는 부패 정치인과 탐욕스러운 기업인 같은 거대한 악(惡)과 맞서 싸운다. 현실 속 검사는 조금 다르다.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무례하기 일쑤고, 법정 밖에서 우연히 피의자와 마주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2년마다 집을 옮기면서 육아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왼쪽부터 박민희·서아람·김은수 검사. 필명을 쓴 김은수 검사는 옆모습만 찍어달라고 했다. 법무연수원 동기인 이들은“대부분의 검사는 우리 주변의 사소한 사건을 성실하게 다룬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2013년 임용된 9년 차 평검사 서아람(35), 박민희(35), 김은수(필명·37) 검사 3명이 쓴 직업 에세이 ‘여자 사람 검사’(라곰)는 ‘찐’ 검사 생활상을 들려주는 에세이집이다. 보통 부장검사 이상은 돼야 책을 내는 검찰 조직에서 보기 드문 평검사의 고백록이다. 출간 전 카카오페이지 연재에서 구독자 수 10만명을 넘기며 화제가 됐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에서 이들을 만났다.

책은 악을 척결하는 무용담이 아닌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에피소드로 채워졌다. 서 검사는 “검사가 사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검사도 옆집 사는 세입자고, 육아에 지친 엄마이며, 때로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

박 검사는 “99% 검사는 거대한 악을 척결하는 게 아니라 버섯 3개 훔친 사건, 배추 한 포기 뽑은 사건 같은, 드라마라면 상상 못 할 사소한 사건을 성실하게 한 건 한 건 다룬다”고 했다. 서 검사는 “치킨집 알바생의 횡령을 입증하기 위해 재고장부를 한 달 가까이 일일이 대조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몇 천장 기록 넘겨보고 판례 찾는 시간이 많은 책상물림”이라고 했다.

여행지 숙소에서 불법촬영(몰카)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중고나라에서 1만원 싼 카시트를 구매하려다가 교회 부목사라고 사칭한 사기꾼에게 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서울 남부지검에서 일하면서 남부지검 검사를 사칭하는 조선족에게 홀랑 속아넘어가기도 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을 ‘덕질’하다가 부부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막내는 점심 식당을 섭외하는 ‘밥총무’를 하며 겪은 일들도 공개한다. 사람이 부족해 출산 휴가를 미룰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다 회사(검찰청)에서 병원으로 실려가 정신을 잃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서 검사와 박 검사는 두 아이, 김 검사는 세 아이의 엄마다. 법무연수원 동기 출신인 세 사람은 지난해 여름 모두 육아휴직 중일 때 의기투합해 책을 썼다. 서 검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왼손으로 이유식을 만들고 오른손으로 똥기저귀를 치우던 지난해 여름 오후 박 검사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이미 필명으로 추리소설을 여러 권 냈던 서아람 검사가 출판사를 섭외했다. 밤잠을 줄여가며 약 2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A4 용지 10장이 넘는 항소이유서, A4 용지 100장까지도 쓰는 불기소장 등을 쓰는 ‘글쓰는 직업’이라 작업이 수월했다며 웃었다. 김 검사는 “화장대에 노트북을 두고 젖먹이 아기가 잠든 사이 한 줄, 두 줄씩 썼다”고 했다. 박 검사도 “주로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아이 잠든 사이 원고를 썼다”고 했다.

김 검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검사가 돼 이렇게 욕을 먹으며 전국을 떠돌며 하염없이 일하는 것인지 생각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럴 때는 어김없이 사직 인사를 찾아 읽는다”고 했다. “검찰을 떠나는 검사들이 쓴 사직 인사를 읽다 보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보이고, 그 결과 ‘승진 욕심 없이 할 말은 하는 할머니 검사로 정년 퇴임 때까지 검찰을 지키겠다'는 꿈이 생겼다.”

/라곰 '여자 사람 검사' 책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