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신항에 세워져 있는 세월호 - 지난 14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가 목포 신항에 세워져 있는 모습.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방문객들이 철제 울타리에 노란 리본을 묶어놨다. /김영근 기자

지난 14일 오후 인천·대이작도를 운항하는 300t급 여객선 복도에는 승객들의 가방과 아이스박스, 유모차 등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폭 1.5m의 복도 3분의 2가 짐으로 가득 차 성인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았다. 통로를 오가던 일부 승객은 짐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복도를 지나던 한 승객은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이곳을 통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찔하다”고 했다.

일부 승객들은 구명조끼가 보관된 캐비닛 앞을 막고 잠을 잤다. 캐비닛에는 ‘비상시 외 구명조끼 제발 꺼내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구명조끼를 꺼내 베개로 쓰는 승객이 많아 이와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아이 위험 행동에도 제지 안 해 - 강원 춘천 소양호의 유람선에서 어린이가 갑판 울타리에 머리를 집어넣고 밖을 내다보는 모습. 아이의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는 선원은 없었다. /김도연 기자

이날 본지는 인천과 전남 완도, 강원 춘천의 여객선·유람선 4척을 점검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지적됐던 문제가 개선된 곳은 적었다. 전남 완도와 제주를 운행하는 여객선에서는 선내에 비치된 177개의 비상 손전등을 이용할 수 없었다. ‘사용 시 걸쇠를 풀고 커버를 여시오’라고 적혀 있었지만, 걸쇠엔 케이블 타이가 매여 있어 열 수 없었다. 복도를 지나던 한 승객은 “비상 손전등을 사실상 전시용으로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이 선박에 실린 차량은 밧줄형 벨트로 바퀴가 고정돼 있었다. 하지만 벨트 대부분은 까맣게 때가 타 낡아 있었고, 벨트를 선체에 고정하는 철제 고리는 상당수 녹슬어 있었다. 승객이 소지한 수하물의 위험 확인 절차는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고압가스류, 화약류 등을 여객선에 실을 때 승객이 머무는 공간에서 최소 3m 떨어진 별도의 장소에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

비상시 대피로에 상자 등 겹겹이-2024년 4월 14일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에서 인천항으로 가는 쾌속선의 복도에 쌓여 있는 짐의 모습. 폭 1.5m인 통로의 3분의 2를 막아 성인 한 명만 지나갈 정도로 길이 좁아졌다. /김보경 기자

관광지 유람선은 탑승 시 신분 확인을 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5년부터 모든 여객선 탑승객의 인적 사항을 전산망에 입력해 승선권을 발권하는 ‘전산 발권’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인천 월미도 유람선은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승선권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직접 쓰게 했다. 선박 안에는 ‘승선권에 성명·생년월일·전화번호를 기재하고 승선 시 신분증을 확인하라’는 내용의 승객 준수 사항이 걸려 있었다. 선사 관계자는 “매표나 승선 과정에서 신분증 확인은 해오고 있었다”며 “올해 들어 이날(14일)처럼 승객이 많았던 적이 처음이어서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정벨트 낡고 고리는 녹슬고-2024년 4월 14일 전남 완도군에서 제주로 향하는 여객선에 실린 차량 모습. 차량을 고정하는 벨트는 낡았고, 고리는 상당수 녹슬어 있었다. /조재현 기자

강원 춘천 소양강 유람선은 신분증 검사는 물론, 개인 정보를 기입하는 절차도 없었다. 승객의 위험 행동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한 어린이는 운항 중인 유람선 갑판 울타리에 머리를 집어넣고 밖을 내다본 채 10분가량 있었다. 하지만 선사 직원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한 승객은 어린 딸과 선박 출입구 바로 앞바닥에 앉아 있었다. 출입구는 쇠사슬 3개로만 막혀 있었다. 유람선 출항 직후 선내에선 안전 수칙이 방송됐다. 엔진 소리에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곳곳에서는 승객들의 안전 불감증이 포착됐다. 인천·대이작도 여객선에선 술에 취한 중년 남성이 조타실 근처에서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선내 음주는 금지 사항이 아니지만, 고성방가 등의 난동 행위는 자제 대상이다. 선내에선 “음주를 자제해달라”는 선장의 방송이 수차례 나왔지만, 일부 승객은 갑판에 돗자리를 깔고 막걸리를 먹었다.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지나친 음주로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가 발생할 수 있을 때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며 “통제가 필요할 경우에는 혈중알코올농도에 대한 검사 권한이 있는 해경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