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5일 서울 종로구 한 고사장에서 토익(TOEIC)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퇴실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원생 김모(27)씨는 지난달 초 IELTS(영연방 공인 영어 시험) 시험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고사실 내 응시생 20명 중 절반이 중국인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응시생 확인을 위한 신분증으로 붉은색 중국 여권을 지참했다. 시험 시작 전 중국인 5~6명이 영어 단어·문법 정리 노트를 함께 돌려보며 중국어로 이야기도 나눴다고 한다.

작년 8월 한한령(限韓令)이 철폐된 뒤 IELTS나 TOEFL 등 영어 시험을 보러 한국을 찾는 중국인 ‘원정 응시생’이 늘고 있다. IELTS 주관사인 영국문화원 관계자는 “응시생을 국적별로 구분한 통계는 없지만, 최근 중국인 원정 응시생이 한국에 많이 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IELTS 응시생은 연간 3만 명인데, 많게는 절반가량이 중국인으로 추정된다.

중국인 원정 영어 응시생이 늘어난 건 중국 내 어학 시험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국문화원에 따르면, 중국 내 IELTS 응시생은 2017년 35만 명에서 2023년 50만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고사장 수는 2017년 89곳에서 2023년 95곳으로 6곳 증가했다. 한반도 면적보다 큰 중국 1개 성(省)에 시험장이 한 곳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3~4년 전부터 일부 중국인 응시생이 베트남·태국 등으로 ‘원정 응시’를 가기 시작했는데, 한한령이 해제되자 이들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중국 산둥대학교 4학년인 리창(23)씨는 지난 2월 IELTS 시험을 보러 서울을 찾았다.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리씨는 제출할 공인 영어 성적이 기준에 못 미쳐 중국에서 시험을 보려 했는데, 인터넷 신청이 몇 분 만에 마감돼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난감하던 차에 친구한테 한국에서 시험을 보라는 조언을 받았다”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미 한국으로 시험을 보러 다녀온 중국 학생들의 수많은 후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는 “중국 대학에서는 학생 여럿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한두 달 함께 공부한 뒤 한국으로 시험을 보러 오는 ‘원정대’를 꾸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중국에선 영어 수업과 원정 시험을 연계한 패키지 프로그램 운용 교육 업체도 생겼다고 한다.

중국인 응시생들은 시험이 끝난 뒤 며칠 더 한국에 머물며 관광도 즐긴다. 중국 톈진에 사는 대학생 장웨이(24)씨는 지난 1월 초 TOEFL 시험을 보러 한국을 찾았다. 금요일에 한국에 도착해 다음 날 시험을 치르고 나머지 이틀은 경복궁과 인사동, 북촌 등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시험 신청 때 강북과 강남 시험장 중 고민했는데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싸고 관광지가 많은 강북 시험장을 골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