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과 인플루언서들이 ‘K푸드’를 즐기는 모습. 왼쪽 위부터 간장게장을 먹고 있는 일본 관광객 히가시지마 자매, ‘쏘맥’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는 베트남 인플루언서 켐, 떡볶이 ‘먹방’을 찍는 에스토니아 인플루언서 마이 슐츠, 치즈 닭갈비를 맛보는 필리핀 인플루언서 풀가. /박상훈 기자, 소셜미디어

지난 20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의 한 간장게장집. 테이블 45개 중 20개를 일본 관광객이 채웠다. 너도나도 간장게장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인증 샷’을 찍었다. 도쿄에서 온 대학생 우에쿠사 아미(23)는 비닐장갑을 끼고 게딱지에 알밥을 올려 비벼 먹었다. 그는 “한국 ‘먹방(음식 먹는 방송)’ 유튜브를 보고 먹는 방법을 미리 공부하고 왔다”며 “게딱지를 접시로 쓰다니! 한국 음식은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했다.

한국 음식에 빠진 외국인들이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 관광 전문가들은 “ ‘K팝’이나 ‘K드라마’를 넘어 이제는 ‘K푸드’가 대세”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관광재단이 작년 하반기 관광 목적으로 서울을 2번 이상 찾은 외국인 500명을 대상으로 ‘서울을 다시 찾은 이유’를 물었더니, 1위가 음식이 맛있어서(75.9점)였다. 쇼핑할 곳이 많아서(73.2점), 날씨가 좋아서(72.9점), 즐길 거리가 많아서(72.7점)는 그다음이었다.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한국 음식이 생각나서 두 번, 세 번 한국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에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일본은 간장게장, 중국은 짜장면, 동남아는 곱창

서울관광재단이 하나카드·나이스지니데이타와 함께 지난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 외식 비용을 분석한 결과,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갈비·삼겹살(41.5%)이었다. 이어 치킨(7.7%), 디저트(6.3%), 맥주(5.7%) 등의 순이었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는 “최근 굴과 딸기, 아몬드, 라면 등 메뉴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나라별로 선호 음식은 달랐다. 일본 관광객은 디저트와 간장게장, 이자카야를 즐기는 데 외식비를 많이 썼다. 하야마 가즈요(50·나고야)는 한국 관광만 40번 왔다. 올 때마다 꼭 간장게장을 먹는다. 그는 “일본에선 간장게장을 먹기도 힘들고, 1인당 1만엔(약 9만원)이 넘는 가격도 부담스럽다”며 “한국에선 1인당 5만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지난 15일 찾은 중구의 중식당에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중국·대만 관광객이었다. 대만에서 온 수유치(32)는 “짜장면을 먹어보고 놀랐다. 우리 ‘자장미엔’이랑은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며 “색깔도 검고 맛도 달다. 이건 중식이 아니라 한식”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들은 감자탕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아 관광객들은 닭갈비와 곱창을 많이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필리핀 관광객 마리안 바우스타(20)는 “필리핀에서도 닭 내장으로 만든 요리를 즐겨 먹는다”며 “곱창 같은 내장 요리에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인플루언서도 ‘K팝’보다 ‘K푸드’

구독자 680만명을 가진 베트남의 틱토커(틱톡 구독자가 많은 인플루언서) 롱춘(30)은 작년 12월 서울, 부산, 경주 등을 찾았다. 그는 ‘K푸드’ 영상을 주로 올렸는데 메뉴가 붕어빵, 비빔밥, 호떡 등 20가지가 넘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 “친절한 사람들,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 지겨운 곳이 없다”고 썼다. 롱춘은 서울시와 서울경제진흥원(SBA)이 연 ‘서울콘(글로벌 인플루언서 박람회)’에도 참석했다. 김현우 서울경제진흥원 대표는 “해외 인플루언서 대부분이 K푸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했다.

서울경제진흥원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는 인플루언서 12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이들이 서울에서 가장 만족한 것은 음식(22.1%)이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좋은 분위기(13.9%), 쇼핑(13.9%)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음식이 16.4%로, K팝 등 한류 문화(13.3%), 좋은 치안(11.7%), 쇼핑(8.6%)보다 앞섰다.

서울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떡볶이(13.8%)였고, 삼겹살(12.2%), 비빔밥(11.4%), 불고기(8.1%) 등이 뒤를 이었다. 서울경제진흥원 관계자는 “인플루언서들은 20·30대가 대부분이고, 여성이 많아 떡볶이 인기가 높은 것 같다”며 “떡볶이는 외국인 여성들에게 통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K푸드 열풍에 대해 서원석 경희대 호텔경영대학 교수는 “음식은 K팝이나 K드라마보다 쉽게 체험할 수 있고 중독성이 더 강하다”고 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요즘은 소셜미디어 관광 시대여서 체험이 중요하다”면서 “로컬(현지 주민들)의 사소한 생활을 경험하고 인증 샷을 올리고 싶어 하는데, 대표적인 게 미식 관광”이라고 했다.


※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쓴 외식 비용은 서울관광재단이 하나카드, 나이스지니데이타와 함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3년 빅데이터 플랫폼 및 센터 가명정보 활용 지원사업’을 통해 구축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