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필수의료의 핵심인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면서, 20일 아침 서울 병원들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부터 온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병원의 전공의들은 이날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전날 이미 1000명이 넘는 ‘빅5’ 소속 전공의들이 사직 의사를 밝혔고 분당서울대병원 110여명, 아주대병원 130여명 등 이미 전국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전공의가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병원들은 응급도와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의 진료나 수술 일정 등을 조율하고 대체 인력 배치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예정된 수술이 연기되고 진료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환자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서관 1층에 환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 /강지은 기자

이날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서관 1층 채혈실 앞에는 평소보다 많은 환자들이 아침부터 병원을 찾았다. 대기 현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에는 ‘대기인원 50명’이라는 안내 문구가 표출되고 있었다. 접수데스크 앞에는 환자들이 30m 넘게 줄을 섰다.

휠체어를 탄 어머니와 함께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백모(56)씨는 “2년 전 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를 데리고 6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데 이렇게까지 줄이 긴 모습은 처음 본다”며 “오전 7시면 사람 세네 명 정도에 불과해 1~2분이면 바로 채혈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확실히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로비가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스1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임모(77)씨는 “이틀 뒤 무릎 수술 전 검사를 받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병원 측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며 “향후 일정을 모르니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격리병동에 있는 아내를 보기 위해 이날 전남 신안에서 올라왔다는 임재남씨는 “아내가 치료는커녕 검사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오전 7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는 환자들 30여명이 접수창구가 열리기도 전에 일찍부터 줄을 서고 있었다. 5살 된 아이가 눈을 다쳐 병원을 찾았다는 최모(32)씨는 “아이가 오늘 꼭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 몰라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전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 접수 창구가 붐비고 있다. /뉴시스

비슷한 시각 서울성모병원 3층 암센터 접수창구 앞 대기실에도 40명이 넘는 환자들이 몰렸다. 갑상선암 환자 박모(75)씨는 “초기 암 환자들은 파업 때문에 당분간 수술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돌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이모(60)씨는 지난 19일 심장 이식을 위한 외과 수술을 받은 남편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주치의가 오전 8시쯤 출근하는데 혹시나 못 만날까봐 2시간 전부터 병원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경과에 따라 남편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전공의들이 없으니까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며 “남편이 수술을 받기 전까지 일반 병실에 있었는데, 환자들이 혹여나 수술을 받지 못할까봐 무척 술렁이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20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에 '진료센터 과밀화로 진료 지연이 되고 있다'는 안내판이 서 있는 모습. /김영우 기자

71세 아버지의 초진 외래접수를 대신하기 위해 신촌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는 박모(39)씨는 “지난 5일에 아버지가 뇌혈관에 꽈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이 많이 늦어질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아버지 상태가 많이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