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방문 도중 피습당했다. 이 대표는 피습 직후 최초 입원했던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소방 헬기를 이용해 전원(轉院)했다. 이에 의사 단체는 잇따라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9일까지 지역 의사회 16곳 중 충북·전남을 제외한 14곳이 비판 성명을 냈다. 성명을 처음 낸 건 부산광역시의사회다.

김태진 부산시의사회 회장이 9일 오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의 한 병원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일각에서는 의사회의 성명을 두고 “사람의 목숨이 오갔던 일인데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에 본지는 이번 성명을 주도한 부산시의사회 김태진(60) 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왜 성명을 발표했나.

“지금껏 쌓아온 응급 의료 체계의 상식과 원칙이 한 번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 전원 문제의 본질은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의 싸움이 아니다. 성명을 낸 건 정치적 논평 차원이 아닌 전문가 단체로서의 입장이지 어느 당을 편들고자 하는 것도, 어느 당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여당과 야당, 수도권과 지방이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응급 현장에서는 제3자 누구보다 환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의료진의 결정 권한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이 대표 피습 이틀 뒤에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건 직후 이사진 사이에서 ‘지역 의료진 차원에서 성명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건의가 나왔다. 상황이 뭔가 옳지 않다는 건 느꼈지만, 환자 상태나 전후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응급 상황이었다면 부산대병원에서 수술해야 했고,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헬기를 타고 상급 종합병원으로 가면 안 됐다. 야당 대표가 아닌 일반인 환자라 하더라도, 환자 정보를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욱 상황 파악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성명서를 내고 나서 부산시의사회 회원들에게서 문자가 쏟아졌다. ‘정말 잘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왜 더 세게 성명서를 내지 않았느냐’는 불만도 있었다.”

헬기로 이송되는 이재명 대표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서울 동작구 노들섬에 도착한 소방 헬기에서 내려지는 모습. 부산 가덕도에서 피습당한 이 대표는 이날 부산대병원에 입원했다가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전원(轉院)했다. /뉴시스

-얼마나 위급해야 헬기로 환자를 이송할 수 있나.

“119 응급 의료 헬기 구급 활동 지침에 따라 환자 생명 유지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 여러 요건이 있다. 응급 상황이 아닌데 탔다면 당시 꼭 필요한 환자의 기회를 빼앗았을 가능성이 있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더 평범한 방법을 이용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성명까지 낼 사안이었나.

“부산시의사회 성명을 포함해 모든 지역 의사회는 성명서 서두에 ‘쾌유를 기원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또 성명서 발표 당시 당 차원의 브리핑과 언론 보도를 통해 이 대표의 건강상 위중한 시기는 지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어떻게 테러를 당한 사람을 비판할 수 있느냐’며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는데, 성명 발표는 지역 의료 체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고의 결과다.”

-부산대병원 의료진은 이 대표 가족의 전원 요청을 존중했다고 했다.

“일상 진료와 응급 진료를 구분해야 한다. 장기간 관찰과 진료가 필요한 일상 진료 환자는 가족이나 주변의 편의를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처치가 시급한 응급 진료의 경우 환자의 안전이 가족이나 주변 편의보다 우선 고려 대상이다. 하지만 정치 지도층이라면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알아야 한다. 벌써 비응급 환자 중 ‘119 불러달라’며 타 병원 이송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그래도 최종 결정은 의료진이 하지 않나.

“칼에 찔려 누워있는 환자 본인이 전원 요청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의료진이 가라고 했을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낮다. 제3자 누군가가 했을 텐데, 그게 가족이든 참모든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응급 현장에서는 환자 안전이 먼저고, 누구보다 의료진의 결정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그 당연한 원칙이 깨져 버렸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나쁜 습관이 나온 것이다.”

-여야는 ‘지역 의료를 살리겠다’며 정책을 쏟아냈다.

“당별로 어떤 정책을 냈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많았다. 어느 정당이든 ‘지역 의료 살리기 TF’가 없었던 곳이 있었나. 하지만 제대로 실행된 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인프라다.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으로 가지 않고 집 가까운 병원에 가도록 의료진과 의료 기구들을 두면 된다. 결국 비용 문제라며 차일피일 미뤄왔지만 의과대학 수를 늘리는 대책보다는 현실적이고 비용도 적게 들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지역 의료 현장에 오기 싫어하는 이유는 정작 그대로 두면서 말뿐인 정책만 쏟아냈다.”

-지역 응급 필수 의료진이 왜 중요한가.

“응급 필수 의료진은 군인과도 같다. 최소한의 운영 지원이 없으면 체계가 무너진다. 지역의 소규모 의료원도 환자 수요에 따라 의료진을 둘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수도권으로 인력 유출이 안 되고, 그래야 지역 의료진도 업무 과중이 줄어들 수 있다. 군인이 전쟁 안 한다고 월급 못 받는 것 아니지 않은가. 환자가 당장 없다고 해서 지역 의료원의 지원을 줄이면 지역 의료 체계는 무너져 버린다.”

-민주당의 ‘공공 의대 설립’등을 반대한 의사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성명을 냈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국민의힘이 추진한 의대 정원 확대도 의사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우리가 성명을 낸 건 정치적 논평 차원이 아닌 전문가 단체로서의 입장이다. 어느 당을 편들고자 하는 것도, 어느 당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의사회 사무국에 ‘우리 대표님에게 왜 그랬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정치적 목적까지 고려했다면 이런 상황을 맞았겠나.”

-민주당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쳤어도 의사 단체가 성명을 냈을까”라고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혹은 경제계 거물이라 하더라도 지역의 응급 의료 체계를 위협하는 상황을 불러왔다면 우리는 똑같이 성명을 냈을 것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잘하는 병원으로 가려고’ 전원했다고 말했는데.

“단순 해프닝이나 실수라고 본다. 말꼬리 잡고 싶지 않고, 정 위원 본인도 양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그런 말이 잘못됐음을 인정할 것이다. 해당 발언이 끼칠 영향까지 모두 고려할 상황이었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역 의료진의 우려가 클 듯하다.

“‘누가 먼저 전원 요청을 했느냐’를 두고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의 진실 공방으로 흘러가는 걸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최소 인력으로 열악한 처우를 받으며 일하는 이들인데, 소중한 동료가 억울하게 죄를 덮어쓰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나. 다시 말하지만, 응급 체계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그 원칙은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나.

“누구에게 꼭 책임을 지우고 처벌을 받도록 하는 마녀사냥은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응급 현장에서는 제3자 누구보다 환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의료진의 결정 권한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