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교육과라고 하면 체육 선생님 할 거냐는 질문만 받죠. 하지만 저희 꿈은 체육과 다른 학문의 융합에 기여하는 겁니다.”

세계적인 권위의 물리수학 분야 논문을 낸 서울대 체육교육과 4학년 박일승(가운데)씨와 이준혁(오른쪽)씨가 논문 지도를 해준 안주은 교수와 함께 논문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정해민 기자

서울대 체육교육과 4학년 학부생 이준혁(25)씨와 박일승(27)씨가 각각 제1저자와 제2저자로 참여한 연구 논문이 물리수학 분야 세계 1위 학술지 ‘카오스, 솔리톤스 앤드 프랙털스(Chaos, Solitons and Fractals)’에 지난 16일 실렸다. 이 학술지는 2022년 기준 물리수학 분야 영향력 지수(IF) 1위다. 물리수학 석·박사도 아닌 체육교육과 학부생이 쓴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은 ‘리아푸노프 지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리아푸노프 지수란, 사람이 운동할 때 초기 상태가 운동 결과에 얼마나 민감한지 나타내는 지표다. 골프 스윙을 할 때 처음 자세가 조금만 달라도 결과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 “리아푸노프 지수가 크다”고 표현한다. 경제학, 신호처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상의 안정성, 예측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지난 2020년 7월부터 ‘인간 보행’을 연구해온 이들은 리아푸노프 지수가 매번 다르게 나오는 데 문제점을 느꼈고, 2021년부터 지수를 측정하기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 연구를 시작했다.

두 학생을 지도하는 안주은(45) 교수는 “기존 연구들과 다른 점도 확실하고 여러 분야에 응용이 가능해 많은 사람이 고마워할 연구”라며 “학생들은 ‘이게 되나’라는 생각으로 논문을 냈다고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이건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안 교수는 두 학생 논문의 교신 저자다.

이씨와 박씨는 체육교육과 학생이지만, 각각 인공지능과 물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이씨는 2016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본 뒤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물리학을 좋아했던 박씨는 대학 입학 후 물리학, 수학 등 강의를 찾아 들었다. 박씨는 “저는 이론을 검증한 뒤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었는데 아이디어가 있으면 먼저 도전해도 좋다는 것을 준혁이에게 배웠다”고 했다. 이씨는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물어보면 바로 대답해주는 형과 함께해 연구가 빨리 진행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연구실 밖에서 다른 체육교육과 학생들처럼 운동을 즐긴다고 한다. 박씨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다. 그는 “서울대 교내 체육대회에서 테니스 1위를 했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아이스하키를 좋아해 체육을 전공으로 선택했다는 이씨는 서울대 아이스하키부를 만들었다. 다음 달 8일이면 이씨가 만든 아이스하키부가 설립 5년을 맞아 대학이 인정하는 공식 운동부의 요건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세계 1위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지만, 처음부터 공부에 매진했던 건 아니다. 이씨는 지난 2019년 2학기 학교 수업을 자주 빠져 학사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씨는 “학사 경고를 받고 안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은 뒤 ‘무언가를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구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박씨도 “신입생 때 럭비부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빠져 일부 수업을 격주로 나가 학점을 무척 낮게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29일 서울대를 졸업한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이씨는 올해 신설돼 단 한 명만 모집하는 해군 인공지능 개발 특기병으로 선발돼 다음 달 11일 입대를 앞두고 있다. 그는 “한국은 미국 등에 비해 체육과 나머지 학문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뚜렷한 편”이라며 “체육이 다른 학문과 융합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꿈을 위한 계획을 군대에 있는 20개월 동안 구체화할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졸업 직후 석사 과정으로 안 교수 연구실에 다시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이번 논문 게재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물리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체육 분야에서도 이런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