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문화거리. 청와대 춘추문에서 도보 8분 거리인 이 골목은 외국인 관광객과 상점을 이용하는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유모차를 끌고 추러스를 사는 여성, 캐리커처 그림을 의뢰하는 외국인 연인이 보였다. 삼청동에서 12년째 한식당을 운영하는 하지원(47)씨는 “청와대 개방 이후 주말 유동 인구가 2~3배는 늘었다”며 “개방 직후에 주말 매출이 60% 이상 올랐고 현재도 개방 전보다 매출은 높은 상태”라고 했다. 하씨는 “청와대 직원이나 오가는 공무원 등 고정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국내외 관광객들이 메워주면서 매상이 늘었다”고 했다.

10일 개방 1주년을 맞은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관람객들이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뉴스1

이날 청와대가 일반 시민에게 개방된 지 1년이 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만의 공간이었던 청와대는 작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청와대 개방 이후 인근 청운효자동과 삼청동, 서촌에는 관광객들이 몰렸다. 청와대 인근에서 진행되던 집회나 시위 등이 줄면서 관광객들의 불편이 줄어든 점도 상권 부흥의 요인으로 꼽힌다.

작년 청와대 개방 이후 지난 5일까지 1년간 누적 관람객 수는 342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인근 상권 점포 수도 늘었다. 서울시 상권 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청운효자동과 삼청동 상권의 2022년 4분기 점포 수는 1년 전인 2021년 4분기보다 62개 늘어났다. 청운효자동의 통인시장에서 건어물 상점을 운영하는 홍모(74)씨는 “코로나로 3년을 고생했는데 청와대 개방으로 지방에서 내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해외 관광객들도 오면서 경기가 살아나는 걸 느낀다”고 했다.

이날 청와대 영빈문 인근 무궁화동산 앞 150m 도로에는 수학여행을 온 고교생, 산악회, 지방 재향군인회 회원 등 단체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 15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버스도 청와대 정문 앞을 지났다. 전남 진도에서 온 장필식(71)씨는 “청와대와 경복궁을 함께 보니 감회가 새롭고 개장 1년 된 날이라 하니 더 기분이 좋다”며 “청와대를 둘러보고 자녀들과 함께 근처 인사동에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라고 했다. 지인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는 박향숙(76)씨는 “청와대 개방 1주년 행사 때문에 예약 없이는 출입이 안 된다고 해 돌아가게 됐다”며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서촌이나 효자동을 가볼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개방 이후 삼청동과 청운효자동 등 인근 상권에 유동 인구가 늘면서 음식점, 카페는 성업 중이다. 삼청동 카페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문희석(30)씨는 청와대 개방 직전인 작년 1월 가게 문을 열었다. 문씨는 “그때는 청와대가 개방될 줄 몰랐다”며 “개방 이후에 손님이 50% 이상 늘었다”고 했다. 삼청동 골목에서 8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동희(60)씨도 “주말에는 아주 바빠서 일손이 부족하다”며 “평일에 청와대에서 진행되는 행사가 좀 더 자주 있다면 상권이 더 번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청운효자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윤모(59)씨는 “전국에서 올라온 내국인 관광객에 중국, 동남아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며 “집회나 시위가 적어져서 관광하기에 더 쾌적한 분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붐비는 서촌 -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촌 일대가 사람들로 붐비는 모습. /남강호 기자

지방에 사는 시민들에게 청와대는 이미 ‘0순위 효도 관광지’로 꼽힌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김남규(27)씨는 지난 3월 경북에서 올라온 부모님을 모시고 청와대 관광을 했다. 김씨는 “오랫동안 개방되지 않았던 곳이라 신기해하셨다”며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와 나무를 보고 부모님이 감탄하셨다”고 했다. 지난 8일 어버이날에도 부모와 함께 청와대를 관람했다는 글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 수십 개씩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주말 청와대를 관람했다는 김인철(63)씨는 “청와대 개방 이후 북악산도 오를 겸 한 달에 한 번은 삼청동을 찾고 있다”고 했다.

MZ세대들에게는 청와대가 일종의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청와대 앞에서 문워크’ 등 댄스 숏폼 영상을 만들어 공유하거나, 청와대를 배경으로 반려견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인증 놀이를 하는 것이다. 청와대와 삼청동 일대 명소를 엮은 문화 관광 코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청와대에서 역사 관광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른 후 삼청동 갤러리를 돌아보라”는 등 여행 코스도 공유되고 있다.

기업들도 삼청동 일대에 젊은 층을 겨냥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이마트24는 지난 5일부터 청와대에서 350m 떨어진 곳에 유명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편의점 외관을 게임 공간처럼 꾸미고 게임 속 아이템을 본떠 만든 식음료를 판매했는데 오픈 3일 만에 방문객 2300명이 넘었다.

개방1주년 음악회… 제2연평해전 등 국가 유공자 유족 등 참석 - 10일 오후 청와대 대정원에서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 특별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음악회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참석했으며 제2연평해전 등 국가유공자 유족, 소방·경찰 공무원 가족 1000여 명이 초청됐다. /대통령실

청와대 인근 상권의 매출 증가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KB국민카드 데이터전략그룹에 따르면 올해 4월 한 달간 청와대 주변 서촌(통의동·효자동·체부동)과 북촌(소격동·삼청동) 내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 카드매출액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4월에 비해 48% 증가했다. 특히 관람객 출입구 인근 카페 매출액이 큰 폭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커피·음료 업종 매출액의 경우 효자동(영빈문 인근)은 190%, 삼청동(춘추문 인근)은 132% 급증했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가 청와대 개방이 시작된 작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북촌 한옥마을, 삼청동 문화거리·카페거리, 익선동 한옥거리, 서촌거리(통인시장) 등 청와대 인근 5개 상권 카드 매출액을 직전 1년간과 비교했더니 주말 매출액이 40%나 뛰었다. 매출액의 약 60%는 식당에서 나왔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청와대 나들이를 왔다가 외식까지 한 관람객이 많았다는 뜻이다.

서울관광재단은 청와대 관광객을 기존보다 늘리기 위해 ‘서울 서밋(summit)’ 등 국제회의를 청와대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청와대에 관광객을 끌어모을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이유다. 실제로 청와대 개방 이후 149일간 204만6000여 명이 찾았는데, 이는 같은 기간 경복궁(117만4000명), 덕수궁(111만명) 방문객 수보다 2배가량 많은 수치다.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청와대 방문객 수를 수용 가능 인원(4만9000명)의 30%인 1만5000명만 받고 있는데도 이와 같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날 청와대 대정원에서는 ‘개방 1주년 기념 특별음악회’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제2연평해전 유족 등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