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2년 만에 경찰의 수사 조직과 기능이 붕괴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찰 내 형사팀·경제팀 등 수사 부서와 사건이 많은 일선 경찰서는 ‘기피 대상’이 됐고, ‘엘리트’ 수사 인력이 로펌 등 외부로 유출되는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수사 부서에 오면 인생을 망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 수사 인력 보충을 위해 변호사 시험에서 다섯번 탈락해 더 이상 응시할 수 없는 이른바 ‘오탈자’를 경사로 특채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사의 지휘로부터 독립해놓고 로스쿨 졸업생을 활용해 수사력 공백을 메우겠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게양된 경찰청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뉴스1

경찰 내부의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은 임계점에 왔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시험을 통과해 받는 수사 자격증인 ‘수사경과(搜査警科)’ 취득 경찰은 매년 급감했다. 지난 2020년 ‘수사경과’ 취득자는 5020명이었는데,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2021년엔 2891명으로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작년엔 1879명으로 감소했다. ‘수사경과’를 갖고 있지만 자격을 반납·해제하고 비(非)수사 부서로 가는 경찰의 수는 급증했다. 2020년 1224명이던 이들은 2021년 3664명으로 3배로 늘었다.

과거 경찰관들이 선호했던 일선 경찰서들의 인기도 떨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해도 서울에서 1급지로 꼽히는 강남경찰서, 영등포경찰서 등 굵직한 사건이 많은 곳을 선호하는 경찰관이 많았다”며 “요즘은 강북경찰서, 도봉경찰서, 성동경찰서 등 사건이 적은 경찰서들에 서로 가려고 한다”고 했다. 수사 실무를 배울 수 있고 승진 확률이 높아 인기가 있었지만 수사 업무 부담에 허덕인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아예 로펌 등으로 빠져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다. 정부공직자윤리위에 따르면, 검경 수사권 조정 전인 2020년에 로펌으로 이직한 경찰은 5명이었다. 하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첫해인 2021년엔 57명이, 작년엔 48명이 로펌으로 갔다. 올해도 3월까지 경찰관 13명이 로펌으로 옮겨 갔다.

‘인력 유출’은 고위급에 한정되지 않았다. 경감·경위 등 현장 실무 책임자까지 다양해졌다. 2021년 전에는 총경 이상 간부들이 로펌 자문위원 등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로펌으로 옮겨 간 경찰은 경감 30명, 경위 6명, 경정 7명이었다. 수사 실무 수사관들이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경찰 익명 게시판에는 최근 “우리 변호사 특채 부팀장이 수사를 8개월 하더니 말없이 의원면직했다”며 “수사 현실을 보고 현타(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음)가 온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다 올해 초 로펌으로 이직한 전직 경감은 “다른 부서 경찰들과 같은 월급 받으면서도 매일 야근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며 “수사관들이 범죄자를 잡는다는 사명감만으로 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제 경찰들은 수사 실적 대신 시험을 통한 승진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승진 시험을 준비하기 편한 부서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대 출신 한 경찰은 “승진 시험을 보려고 사건이 적다는 경찰서로 옮겨 왔다”며 “몇몇 경찰관은 사건 많은 서울청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일선으로 내려와 로스쿨에 다니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 국수본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며 다섯 번의 변호사 시험을 모두 탈락한 로스쿨 ‘오탈자’ 특채를 추진했다가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수사를 하려는 사람이 정말 없어서 외부에서 긴급 수혈을 하려던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경찰 자존심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했고 이는 없던 일이 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문재인 정권 때 이뤄졌다. 이전에도 일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있었지만, 문 정권 때는 급격히 진행됐다. 고소·고발 사건이 경찰로 일원화되고, 부패·공직자·선거 범죄 등 6대 범죄를 제외한 모든 사건을 경찰에서 처리하게 됐다. 문제는 수사권 조정이 대책 없이 급하게 시행되다 보니 경찰이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일선 경찰들은 ‘수사 부서의 붕괴’를 성토하는 분위기다. 지난 6일 경찰청 익명 게시판에는 자신을 ‘수사 부서 3년 차’라고 밝힌 한 경찰이 “수사 부서에 오면 인생을 망친다”는 글을 올렸다. 이 경찰은 “수사하면 멍청한 것”이라며 “사건이 계속 물밀듯이 들어오는 데 답이 없다, 인력을 늘리든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일선 경찰은 “경찰 수사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며 “자부심으로 버티던 수사 능력자들은 수사권 조정 이후 포기하고 타 부서로 전출 가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는 “빈자리는 강제 순번을 만들어서 수사에 뜻도 없던 사람이 실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은 “정치권 놀음에 수사권 같지도 않은 수사권 받아온다고 ‘생쇼’를 하더니 돌아오는 건 실무자 갈아 넣기”라며 “안 갈리면 갈릴 때까지 가둬놓기”라고 했다.

수사권 조정 이후 생긴 각 지방청 내 반부패공공범죄 수사대는 밀려드는 사건에 ‘인지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검찰 특수부가 담당했던 성격의 사건을 일선 경찰서에서 하기는 어려워 반부패수사대가 전부 맡아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며 “몇 달 전부터는 인지 수사를 위해 반부패수사대에 사건을 배당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독립기관으로 국가수사본부를 신설했지만, 큰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전에 있던 부서들을 국수본으로 재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 익명 게시판에는 “경찰 수뇌부들 자진해서 수사권 반납하자”는 글도 올라왔다. 현재 경찰은 독자적으로 무혐의 여부를 판단한 뒤 기소가 필요하다고 보는 사건은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사권이 아니라 ‘복사권’을 가져왔다”는 말도 나왔다. 절차만 복잡해져 검찰에 넘기거나 보관할 서류를 복사하다 하루가 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