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어린이대공원의 물범 점순이·점돌이는 올해 33살이다. 노환으로 눈에 백태가 끼었고 1m 앞 사물도 판별 못 한다. 평균수명 20년을 넘긴 물범들은 기력이 약해 물속에서 잠자는 시간도 2시간 이상 늘었다. 움직이는 시간이 적다 보니 “죽은 것 아니냐”는 관람객들의 신고가 한 달에 10번꼴로 들어온다고 한다.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의 동물들이 늙어가고 있다. 동물원 동물 600마리 중 2030년까지 70%가 자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환으로 관절염과 탈모, 시력 약화 등의 증세를 보이는 동물이 많다 보니 동물들의 건강을 위해 관절염약과 피부약, 신장약 등을 먹인다. 사육사들은 이 동물들을 ‘어르신’으로 부른다. 사람 수명으로 따지면 백 살에 가깝기 때문이다.

고양잇과 대형 맹수인 퓨마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글루코사민 성분의 보조제를 먹고 있다. 퓨마의 평균수명은 15년인데, 이곳에 있는 퓨마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16살과 14살이다. 14살 수컷 퓨마 ‘으니’는 1년 전부터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여 사육사들이 보조제를 먹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래가 깔린 방사장에는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푹신한 건초도 깔아뒀다. 갯과인 검은등자칼 한 마리도 예방 차원에서 관절염 보조제를 먹고 있다. 검은등자칼은 평균수명이 10년인데, 이곳에 있는 검은등자칼은 현재 8살이라고 한다.

원숭이 마을 원숭이 12마리는 절반 이상이 탈모 증세를 보이고 있다. 원숭이는 일반적으로 20년가량 사는데, 이곳의 최고령 암컷 원숭이는 25살이다. 등 부분 털이 모두 빠져 속살이 드러났고, 나머지 부분에도 털이 듬성듬성 남아 있다. 한때 ‘서열 1위’였던 18살 돼지꼬리원숭이는 나이가 들어 털이 빠지고 외형이 변하면서 무리에서 소외당했다고 한다. 사육사는 “18살 원숭이를 사육사들끼리 ‘어르신’이라고 부른다”며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피곤하면 실외 방사장에 나오려 하지 않고, 음식도 다른 원숭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먹는다”고 했다.

큰바다사자는 6년 전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노화는 피하지 못했다. 평균수명이 20년 안팎인 큰바다사자의 나이는 25살로, 피부가 자주 벗겨져 피부병 약을 자주 처방해준다. 고양잇과 동물은 나이가 들면 신장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의 재규어도 평균수명 15년을 넘은 17세가 되자 예방 차원에서 신장약을 먹고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은 국내 대형 동물원 중에서도 특히 고령화 진행이 빠른 편이라고 한다. 서울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최근 공원 재조성을 위해 연구 용역을 진행했는데 동물들의 거주 요건이 더 좋아지려면 개체 수가 더 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동물 번식을 줄이고 신규 동물을 받고 있지 않아서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정을 모르는 관람객들은 동물들이 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지난 1일 자녀 두 명과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시민 박세은(40)씨는 “원숭이 털이 빠져 있는 것을 보고 6살 아들이 ‘아픈 것이냐’고 물었다”며 “동물들이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건 몰랐는데 동물원 내부에 설명이 더 친절히 돼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물들이 나이 드는 모습을 그대로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동물 친화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동물들의 습성에 맞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며 “어리고 예쁜 동물만 전시하고 나이 든 동물은 실내 축사에 가두는 게 아닌, 노환 치료 과정에 있는 동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