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4대문’ 안으로 불리는 서울 중구의 장충고등학교가 개교 90주년인 올해 처음으로 남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작년에는 남학생만 신입생 121명이 입학했지만 올해는 남학생 73명, 여학생 78명 등 총 151명이 입학했다. 야구 명문 학교 중 하나로도 알려진 장충고에 이런 변화가 닥친 것은 최근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가 달라진 탓이다. 우선 출생아 수가 줄고 있다. 그 여파로 전국 학령인구(6~17세)는 2013년 658만명에서 2023년 531만명까지 떨어졌다. 또 하나는 성비(性比) 변화다. ‘남아 선호’ 풍조가 퇴색하면서 여아 100명당 남아 숫자를 뜻하는 출생 성비(性比)가 작년 104.7명으로 45년 만에 최저치가 된 것이다.

장충고는 두 가지 변화가 한번에 닥치며 수년간 입학생이 줄어 내부적으로 고민이 컸다고 한다. 전교생 수가 2018년 10월 기준 472명에서 2022년 10월 기준 356명으로 내려왔다. 거기다 장충고가 있는 중구에서는 고등학교가 남학교만 3개 있어 과거와 달리 여학생 비중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학생들이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다녀야 해 불편도 컸다. 이태희 장충고 교장은 “학생 수를 확보하기 위해 작년에 과감하게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여자화장실 등 시설도 갖춰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2020년 장충고 졸업생 김은성(22)씨는 “올해 초 한 동창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며 “동창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잇따랐다”고 전했다.

특히 서울 중구에서는 장충고 외에도 작년 초 남학교인 대경중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서울 중구의 경우 주소지를 둔 10대 인구가 2017년 8773명에서 2021년 6951명까지 줄었는데, 이 기간 대경중 신입생도 2017년 123명에서 2021년 69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남녀공학이 된 작년에는 신입생 118명을 받으며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학생수 감소’와 ‘성비 하락’이라는 인구 구조의 변화 앞에서 장충고·대경중 등과 같이 남학생 혹은 여학생들만 받아왔던 단성(單性)학교들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사례는 지난 2018년 이후 5년간 전국 90곳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지역 소멸’이란 말까지 나오는 비수도권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 학교들에도 이런 변화가 닥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서울시 인구 추계에 따르면 서울의 학령인구는 2020년 129만4943명에서 2040년에는 66만2271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전교생이 240명이 안 되는 소규모 초등학교는 작년 42곳에서 5년 뒤인 2027년엔 80곳으로 두 배가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폐교’를 염두에 두는 학교도 생겼다. 4대문 안인 서울 서대문구의 사립학교인 A여중이 학생 수 감소 때문에 오는 2027년 폐교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개교 102년을 맞은 이 학교는 2019년부터 5년째 신입생이 100명을 밑돌고 있다. 작년 신입생이 71명에 그치자 서울시교육청과 폐교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는 93명으로 신입생이 약간 늘었지만, 앞으로 10년 내 50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자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학령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제부터 남학생을 받는다고 해도 계속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A여중이 실제 폐교할 경우 서울에서 학생 수 감소로 폐교하는 일곱 번째 학교가 된다. 2020년 강서구 염강초와 공진중이 폐교됐고 이달 1일 자로 광진구 화양초가 사라졌다. 내년에는 도봉구 도봉고가 문을 닫고, 성동구 성수공고가 휘경공고(동대문구)로, 덕수고가 경기상고(종로구)로 통폐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