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사는 직장인 김모(28)씨는 지난 10일 점심시간에 한 대형 카페에서 5600원을 주고 일회용컵에 담긴 밀크티 한 잔을 샀다. 음료 가격은 원래 5300원인데, 컵 보증금 300원을 더해 5600원을 냈다. 이 가게는 지난 12월 2일 세종시와 제주도에서 시범 도입된 ‘일회용컵 보증금제’ 적용 매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음료 포장 때 사용하는 일회용컵 하나당 보증금 300원을 내게 하고, 소비자가 이 컵을 반납하면 돈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전국에 100개 이상의 매장을 소유한 투썸플레이스, 이디야 등 프랜차이즈 50여 곳의 세종·제주 점포 526개에서 시범 실시되고 있다. 환경부는 시범 사업이 끝나면 전국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김씨는 일회용컵을 반납하는 대신 음료를 다 마시고 무심코 컵을 그냥 버렸다고 한다. 반납하면 돌려받을 수 있었던 300원을 날린 셈이다. 그는 “음료를 산 곳과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만 컵을 받아준다고 해 번거롭기도 하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냥 음료 값이 오른 셈 친다”고 했다.

지난 10일로 세종시와 제주도에서 운영 중인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 100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더 많다. 자영업자들은 “보증금 때문에 손님만 줄어든다”고 불만이 크고, 소비자들은 “번거롭다”는 반응이다. 실제 지난 5일 기준 약 3개월간 일회용컵 회수율은 세종이 40%, 제주가 30%에 그쳤다. 일회용컵 10개 중 6~7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범 사업 적용 대상인 카페는 특수 바코드가 새겨진 라벨이 붙은 일회용컵을 쓰는데, 컵을 반납할 때 바코드를 읽는 절차를 거쳐 구매자의 스마트폰 앱으로 보증금을 돌려준다. 하지만 이 과정이 너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다. 별도 앱을 깔아야 하는 데다 일회용컵이 깨끗하고 훼손되지 않은 상태여야 반납이 가능하다. 또 무인회수기가 있는 일부 쇼핑몰이나 렌터카 업체 등을 빼면 대부분 같은 브랜드 카페에서만 반납할 수 있다. 예컨대 이디야 컵은 이디야 매장에만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 제도에 따를 이유가 없다는 냉랭한 반응이다. 세종에 사는 직장인 이모(27)씨는 “불편한 데다 보증금 탓에 돈 더 내야 해서 주로 이 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개인 카페를 간다”고 했다. 작년 12월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는 직장인 안모(27)씨는 “일회용컵을 반납하겠다고 여행 중에 컵을 모아서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비현실적”이라고 했다.

카페 점주들은 “가뜩이나 불황인데 손님이 줄었다”며 울상이다. 컵 보증금이 의무적으로 매겨지다 보니 이 제도가 적용된 카페는 ‘음료 값이 더 비싼 가게’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한 매장 187개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게에 온 손님이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행하지 않는 가게로 옮겨간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9%에 달했다.

세종·제주의 소비자나 카페 주인들은 환경 보호라는 목적엔 공감하지만, 정부가 무작정 제도를 밀어붙일 게 아니라 반납을 더 편하게 개선부터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게 ‘표준컵’이다. 개인 카페에서 음료를 샀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샀건 아무 곳에서나 컵을 반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종열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가맹거래사는 “환경부가 소비자나 자영업자에게 제도를 강요하기 이전에 프랜차이즈와 협의해 통일된 컵을 만들어 반납을 쉽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앱으로만 반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년층의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더 비싸게 음료를 구매해야 하는 일도 많다. 이른바 ‘노인세’를 내는 것 같은 상황이 생기는 셈이다. 장인택 세종일회용컵대책위원장은 “노인들이 앱을 깔 줄 몰라서 컵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앱을 설치하려면 본인 계좌 인증까지 해야 해 직원들이 앱 설치를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환경부는 주요 상가나 관광지 등에 ‘무인 회수기’를 대폭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제도를 전국에서 시행할 경우 회수기 설치비도 천문학적일 거란 반론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증금을 부과하는 방식과 반대인 다회용컵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쪽으로 제도를 시행해 보면 보다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