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부모 부양 책임이 자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1%까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15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병원 신세를 오래 지는 가구원은 많아졌고, 이에 따라 건강보험 의존도 역시 높아졌다.

어버이날을 앞둔 2022년 5월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노인복지관에서 시립행궁동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있다. 2022.5.2/뉴스1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2년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한국복지패널조사는 2006년 시작된 전국 단위 대규모 복지 관련 설문조사로, 작년엔 7865가구를 대상으로 3~8월 6개월간 시행됐다.

“부모 부양 책임은 자식에게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 응답자는 21.39%로, 국민 5명 중 1명꼴이었다. 반면 “부모 부양 책임이 자식에게 있다”에 반대하는 비율은 49.14%로, 찬성의 두 배를 넘었다.

부모 부양 책임에 대한 인식은 2007년 조사에서 처음 도입했다. 그해 부모를 모실 책임이 자녀에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 응답자가 52.6%(매우 동의 12.7%, 동의 39.9%)로 절반을 넘었다. 반대는 24.3%였다. 하지만 이 비율은 2013년 처음 ‘반대’(36.03%)가 ‘동의’(35.45%)를 앞지르면서 역전된 이후 점점 그 격차가 벌어졌다. 다만 따로 사는 부모와 자녀가 연락하는 빈도는 같은 기간 월평균 93회에서 112회로 증가했다.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건 동의하지 않지만 교류는 늘어난 모습이었다.

가족을 바라보는 한국인들 인식은 이외에도 지난 15년 동안 달라진 게 많다. “어린 자녀는 집에서 어머니가 돌봐야 하는지”도 그중 하나다. 어머니가 돌봐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는 응답은 2007년 64.7%에 달했지만, 2022년엔 39.6%로 크게 줄었다.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은 17.6%에서 31.22%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족 갈등의 주요 원인 순위도 뒤바뀌었다. 15년 전엔 응답자의 28.2%가 ‘경제적 어려움’을 1순위로, 가구원 건강(30.4%)을 2순위로 답했다. 반면 2022년엔 가구원 건강을 1순위로 꼽은 비율이 절반(50.44%)을 넘었고, 경제적 어려움(35.88%)은 2순위로 내려갔다.

가구원 1인당 연간 평균 입원 일수는 15년 사이 1.8일(2006년)에서 16.28일(2021년)로 늘어, 가족 중 질환 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크게 늘어났다. 이 같은 변화의 영향으로 “국가 건강보험을 최소한으로 축소하고 민간 보험에 의존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22.4%에서 10.76%로 감소한 반면, 반대는 53.9%에서 72.35%로 뛰었다.

이번 조사에는 전반적인 사회·복지 관련 인식을 엿볼 수 있는 항목들도 들어 있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항목엔 34.82%가 찬성, 41.93%가 반대해 2007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보사연은 “선별적 복지보다는 보편적 복지에 대한 찬성 비율이 더 높았다”고 분석했다. 다만 비율은 가구 소득에 따라 달라졌다. 저소득 가구는 49.86%가, 일반 소득 가구는 32.28%가 선별적 복지에 찬성한 것이다.

소득·재산 평등 정도를 묻는 항목에선 ‘평등하다’는 응답이 15년 전에 비해 6.19%포인트 증가, 13.99%로 집계됐다. ‘불평등하다’는 응답은 66.54%로 같은 기간 10.66%포인트 감소했다. ‘매우 불평등하다’고 답한 비율은 24.2%에서 9.56%로 급감했다. 이번 조사·분석을 함께한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 부양·자녀 양육 등이 특정 개인이 아닌 사회 책임이라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세부 항목에서 저소득 가구와 일반 가구 계층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