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공개된 133층 ‘상암DMC랜드마크’ 빌딩의 조감도. /서울시
2009년 공개된 133층 ‘상암DMC랜드마크’ 빌딩의 조감도. /서울시

서울시가 11년 전 무산됐던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건설 사업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잠실 롯데월드타워(123층)보다 높은 초고층 빌딩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상암 DMC 랜드마크 사업은 마포구 상암동 3만7262㎡(약 1만1000평)에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짓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2000년대 초 상암동에 방송사 등이 모인 디지털 미디어 단지를 조성하면서 서울 서북부권의 랜드마크(상징 건축물)를 짓겠다며 이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2012년 사업이 무산된 이후 이 땅은 11년간 공터로 남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23일 “DMC 랜드마크 터를 개발할 사업자를 다시 선정하기 위해 올 상반기에 부지 매각·공급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며 “올해 안으로 ‘우선 협상 대상자’를 정하고 내년부터 구체적 사업 계획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사업은 2002년 시작됐다. 대우건설 등 25사가 출자한 ‘서울라이트타워’가 2008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서울라이트타워는 3조7000억원을 들여 133층 빌딩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163층)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높은 빌딩을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2009년에는 기공식도 열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공식에 참석해 “DMC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서면 주변 디지털 미디어 콘텐츠 산업과 시너지 효과가 굉장히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터졌고 서울라이트타워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서울시에 내야 할 토지 대금을 연체하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시는 2012년 결국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사업 신청서를 낸 업체는 없었다. 2020년에는 문재인 정부가 8·4 부동산 대책을 통해 이 땅에 임대주택 등 2000호를 짓겠다고 해 주민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번에 DMC 랜드마크 건설 사업을 재추진하면서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업 요건도 완화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100층 이상 건물을 고집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50층 건물 2~3동을 짓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100층 건물 한 동을 짓는 데 50층 건물 두 동을 짓는 것보다 비용이 2배 이상 들기 때문에 사업 성사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주거 시설 비율도 종전 계획보다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업성을 높이려면 사무실보다 주거 시설을 많이 지어야 하는데 서울시는 그동안 주거 시설 비율을 20% 이하로 제한해 왔다. 시 관계자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도입할 ‘직주락(職住樂)’ 개념을 상암 랜드마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직주락’은 업무와 주거, 문화 시설을 섞어 한곳에서 모두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DMC랜드마크’ 건설 사업 부지의 모습. 디지털미디어단지에 있는 축구장 5개 크기의 노른자위 땅이다. 2012년 사업이 무산된 이후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돼 있다. /서울 마포구청

서울시는 또 DMC 랜드마크 건설과 함께 상암동 디지털미디어단지와 LG사이언스파크 등 연구·개발 단지가 있는 강서구 마곡동을 연결해 시너지를 내는 방안도 추진한다. 상암동과 마곡동을 묶어 서울 서부권 중심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상암동과 마곡동을 잇는 교통망을 확충하고 한강 다리를 더 짓는 계획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부권은 교통 정체가 심한 지역이다. 방화대교와 가양대교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면 상암동과 마곡동을 교통 체증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게 서울시 판단이다.

DMC 랜드마크 주변 대중교통 대책도 함께 추진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하철 디지털미디어시티역과 DMC 랜드마크 등을 오가는 트램이나 모노레일 등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 성사까지 난관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금리,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악재가 많아 수조원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초고층 빌딩을 짓는 붐이 일었지만 중도에 무산된 사례도 많다. 국내에서도 상암동뿐 아니라 용산 역세권, 잠실, 인천 송도 등에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계획이 발표됐지만 현실화한 것은 잠실 롯데월드타워뿐이다. 한 부동산 시행사 관계자는 “지금 국내외 경제 상황에서는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고집하기보다 건물 외관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방식 등으로 차별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