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유모씨가 가벼운 옷차림으로 스크린 골프장을 찾아 골프 연습을 하고 있다./독자 제공

서울 동작구에 사는 취업준비생 김모(25)씨는 작년 12월부터 혼자 스크린 골프장을 다니고 있다. 취업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것이나, 골프에 흥미를 느낀 게 아니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채워 넣기 위한 취미로 골프를 선택했다고 한다. 김씨는 “작년 말 인턴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취미를 ‘축구’라고 했는데, 면접관이 ‘위험하겠다’며 떨떠름한 반응만 보였다”며 “그때부터 취미도 취업 대비의 일환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가격이 저렴한 평일 오전에 스크린 골프장을 다니고 있음에도 매달 20만원씩 들지만, 김씨는 “취업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덜 먹고 덜 써가며 골프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가운데 매달 수십만원씩 들여가며 취미를 개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는 상황에서, 자격증이나 인턴 경력 등을 넘어서 취미마저 취업을 위한 투자 대상이 된 것이다. 사람인HR연구소에서 작년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390개 기업 중 36.7%가 올해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주요 대기업과 공기업 등에서 취미와 특기를 자기소개서에 기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단답식으로 묻는 것을 넘어서 ‘서술’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은행에서는 올해 상반기 채용 지원 시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 ‘지원자가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지속해온 활동 혹은 취미에 대해 기술하고, 이러한 활동 혹은 취미가 지원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기술하시오’ 라는 항목을 넣기도 했다. 이 때문에 취준생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력서에 취미 쓰는 법’이란 게시글이 2000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취미와 특기는 면접용, 임원들이 관심 가질만한 취미를 쓰면 가서 할 말도 생긴다”는 조언까지 공유되고 있다.

특히 지원하는 직종과 업계 분위기에 따라 ‘맞춤 취미’를 찾는 이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금융권 회사 취업을 준비하는 정모(25)씨는 작년 말부터 재즈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다. ‘금융맨’ 이미지에 걸맞게 고급스러우면서도 뻔하지 않은 취미를 찾다가 재즈 피아노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주 1회 학원을 가는데 매달 25만원씩 드니 배달 음식을 덜 시켜 먹고 생활비 아껴가며 다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건설회사 취업을 준비하는 옥모(23)씨도 체력이 좋고 부지런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테니스 레슨을 받고 있다. 옥씨는 “처음 장비를 구입하는 데 30만원 넘게 들었고 그룹 레슨 비용으로 매달 20만원씩 나간다”며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얼마 전 카페 아르바이트까지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크린골프장이나 피아노 학원 등에서도 취업할 때 도움이 되고자 찾아오는 청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턴 활동을 하며 취업도 준비하고 있다는 유모(25)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벼운 차림으로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다고 한다. 심지어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대비해 악기 연주 취미를 가지면 좋다”며 홍보하는 학원도 등장했다. 울산에서 기타 전문 음악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학원에 다니는 취준생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학원 홍보 방법으로 취미를 부각시키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며 “특히 취미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해서, 취업 시 그런 점을 부각시키려 찾아오는 취준생들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