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직장인 A(28)씨는 최근 자기가 키우는 두 살 ‘코리안쇼트헤어’종(種) 고양이가 집에서 대소변을 보는 화장실로 쓰는 모래를 사려고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자주 쓰던 브랜드의 6㎏짜리 모래 한 포대가 3만원을 넘긴 것이다. 작년 5월쯤만 해도 같은 양을 2만3000원에 살 수 있었는데 가격이 약 30% 치솟았다. A씨는 “원래 매달 모래를 바꿨는데 앞으로는 6개월에 한 번만 바꿀 생각”이라며 “단순한 모래인데 값이 이렇게 빨리, 많이 오를 이유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고물가 속 반려동물을 키우는 606만가구 사이에서 “동물 키우는 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들 줄 몰랐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필수품인 사료나 간식은 물론, 칫솔이나 이동용 케이지(우리), 영양제 등 각종 반려동물 전용 제품 가격이 고공 행진하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가 동물을 아끼는 반려인들 심리를 이용해 ‘반려동물 프리미엄’을 붙여 가격을 높이는 일이 늘고 있다. 반려인들은 사람 물건보다 더 비싼 반려동물 물건을 산다는 걸 세금 내는 데 빗대 자조적으로 “’펫택스(Pet Tax)’를 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주요 반려동물 전용 제품

20일 현재 인터넷 가격 비교 사이트를 보면, 반려동물 필수품인 사료나 간식, 고양이 모래 등의 가격이 최근 줄줄이 크게 올랐다. 국내외 주요 브랜드의 강아지용 사료 값은 2022년 5월과 비교해 27~36% 안팎 올랐다. 인상 폭이 6.8~10㎏ 기준으로 1만5000~2만1000원이다. 특히 물가 상승 폭이 사람용 제품보다 더 큰 경우도 적지 않다. 이달 초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1월 대비 5.2%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반려동물 용품의 소비자물가지수는 8.3% 상승했다.

‘반려동물’ 간판을 단 제품 값이 사람이 쓰는 비슷한 물건보다 지나치게 높은 경우도 많다. 본지가 쿠팡 등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조사해보니 한 치과용품 제조 업체는 ‘고양이 어금니용 칫솔’을 4개 83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이 업체가 파는 사람용 칫솔(부드러운 모)은 4개 4300원이었다.

또 다른 업체는 고양이 간식인 ‘동결 건조 북어 큐브’ 120g짜리를 1만6000원가량에 판매하고 있었다. 사람이 먹는 국거리용 동결 건조 북어 큐브는 시중에 100g당 6700원짜리도 있다. 두 제품 모두 원재료는 ‘러시아산 선상 냉동 명태살’로 같았다. 100g 기준으로 반려동물용 제품이 국거리용 가격의 2배쯤 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거리용 동결 북어를 고양이에게 줘도 되고 염도가 걱정되면 물에 불려 먹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반려동물 제품을 2배 주고 살 이유가 없는 셈이다.

B 반려동물 용품 업체는 가로 60㎝, 세로 120㎝ 반려동물 전용 타월을 한 장 2만8900원에 판매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에서는 같은 소재면서 크기는 4배쯤 되는데, 가격은 60% 수준인 타월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 업체가 판매하는 반려동물용 우유 ‘펫밀크’는 “수의사와 공동 개발했고, 피부와 털 건강을 위한 콜라겐이 첨가됐다”는 것 등을 앞세워 사람이 먹는 같은 업체의 ‘락토프리 우유’(유당 제거 우유) 가격의 약 3배를 받고 있다.

상당수 반려인들은 “자식같이 키우는 동물에게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이용한 상술 같다”고 한다. 부산에 사는 김모(26)씨는 “어떤 업체는 20만원짜리 플라스틱 고양이용 화장실을 팔면서 ‘1년에 한 번씩 교체하라’고 하더라”면서 “무슨 특수 소재도 아닌데 해마다 화장실을 바꾸라는 건 동물 사랑을 악용한 지나친 마케팅”이라고 했다. 세 살짜리 강아지를 키우는 직장인 이모(26)씨는 “각종 영양 성분이 든 반려견 기능성 생수나 뼈나 눈 관련 영양제가 비싸긴 한데 실제 효과가 있는지, 과장 광고는 아닌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 제품 가격을 매기는 건 자유지만 과장·허위 광고는 없는지, 담합은 아닌지 등을 공정거래위원회나 소비자원 등에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특히 반려동물 산업 규모가 점점 커지는 만큼 품질과 무관하게 널뛰는 가격을 제어할 구체 지침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