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둔 자녀 11명에게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20일 장학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중 10명이 ‘생명나눔의 자긍심을!’이란 글자판을 들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및 김형진·박선화씨 가족 제공

경기 화성시에 사는 김민채(17)양은 초등학생이던 6년 전 아버지를 잃었다.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던 아버지는 바쁜 와중에도 딸을 데리고 전국을 누비며 캠핑을 하곤 했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2017년 초 교통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뇌사 상태가 됐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 한다”고 했던 아버지의 뜻을 살려 가족들은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환자 4명이 새 삶을 얻었다. 민채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 캠핑을 하다 ‘딸아, 요즘 킹크랩이 제철이라 수율이 최고다’라며 킹크랩 손질을 해주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요즘 교정공무원이 되는 게 꿈이다. “따뜻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교도관이 돼 가장 어두운 곳에서 교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가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본부 회관에서 김민채양처럼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수여하는 행사를 열었다. 장기 기증자들의 뜻을 기리고, 그들의 가족이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조금이라도 돕자는 취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장기 기증자 가정의 자녀 11명은 한목소리로 “우리도 부모님처럼 누군가의 힘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겠다”고 했다.

6명의 환자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김형진씨의 가족들이 모인 장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및 김형진·박선화씨 가족 제공

장학금을 받은 11명 중 하나인 대학생 김도엽(23)씨의 아버지 김형진씨는 2009년 1월 9일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그 뒤 환자 6명에게 장기를 나눠주고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당시 어렸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 눈을 감은 채 누운 아버지를 간호사가 정성껏 보살피는 장면이다. 그 기억을 딛고 김씨는 현재 중앙대 간호학과에서 공부 중이다. 김씨는 “나도 누군가의 희망이 되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서 “아버지를 닮기 위해 지난달 장기 기증 희망 등록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박영림(24)씨는 고등학생이던 2017년 초 세탁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보고 싶어 가게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것을 직접 봤다. 급성 뇌출혈이었다. 아버지는 2개월간 병원에 있다가 사망했다. 그의 장기로 4명의 생명을 구했다. 한순간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와 언니, 자신은 그 충격으로 서로 대화가 단절되는 등 가족 전체가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박씨는 “지금은 씩씩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일하는 영양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5명의 환자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박선화(오른쪽 위)씨 가족의 단란했던 모습.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및 김형진·박선화씨 가족 제공

문소희(25)씨는 3년 전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어머니 유순미씨는 2020년 11월 당시 한 건물에서 사무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건물에 불이 나 질식해 쓰러졌다. 병원에 옮겨졌지만 2개월 동안 눈을 뜨지 못하다가 숨을 거뒀다. 문씨는 당시 코로나 사태 탓에 어머니 면회도 제대로 못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문씨는 “신문 등에서 여러 사고로 숨지는 사람들 얘기를 읽으면 남 일 같지가 않다”면서 “지금 자동차학과에서 공부하는데, 교통사고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 없도록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이날 김우진(16)군, 김형진(20)씨, 배진우(19)군, 신주연(20)씨, 안현균(14)군, 최지수(16)양, 홍은지(20)씨도 행사에 참석해 부모님을 기리며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장기이식 희망자가 늘지 않고 있어 우려도 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뇌사기증자 장기이식현황에 따르면, 국내 뇌사 장기기증자는 지난 2016년 573명까지 늘었지만 2018년 400명대로 떨어진 뒤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2020년 478명에서 지난해 405명까지 줄어든 상태다.

박진탁 본부 이사장은 “장기 기증인의 자녀들이 장차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내기를 응원한다”면서 “우리도 이들의 숭고한 사랑을 기리고 장기 기증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